<창세기 33장 묵상 - 너의 미소 속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얼굴>
어제 본문이었던 32장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했죠.
그 때 야곱이 이 얍복나루의 씨름터의 지명을 ‘브니엘’로 불렀다는 것 기억나시죠?
브니엘(peniel)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죠.
20년 만에 만나는 형 에서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할 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의 하나님과 씨름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된 야곱, 그가 본 하나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겠죠? 하나님의 얼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 정말 대단한 사건이긴 했나봅니다.
창세기 33장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란 겁쟁이가 너무 많이 변해 있네요. 어제의 야곱 맞나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가족들의 맨 뒤에 숨어서 형을 만나려고 했던 야곱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가족들 맨 앞에서 형을 만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본데서 시작됐다 봅니다.
우리 말로 ‘얼굴’은 ‘얼’과 ‘꼴’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얼이란 것은 정신을 의미하고, 꼴이란 모양을 의미하죠. 얼굴은 정신과 마음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분위기를 보았고 읽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본 하나님의 얼굴은 아마도 형과 화해하고 평화를 만들기 원하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얼굴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분의 얼굴 빛을 비춰주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시편 67편 1절)
야곱은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형에게 절을 했습니다.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는 건 그만큼 두려움이 컸다는 것이겠죠.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바른 태도입니다. 겸손한 태도이지요.
그런데 야곱의 예상과 달리 에서는 야곱을 붙들고 울기 시작했고, 야곱도 함께 울었습니다. 에서의 눈물과 포옹은 야곱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용납하고 받아 준 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형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같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형의 얼굴이 그가 밤새 씨름하여 보았던 하나님의 얼굴과 닮았다는 거죠.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을 형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하고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귀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구요.
바로 우리의 이웃들의 환한 미소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호의(친절)와 신적(神的)자비가 상대방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용서와 용납 그리고 사랑은 그의 얼굴에 녹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과 흡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던 야곱이 이를 증명하고 있잖습니까?
오늘 나의 얼굴에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이 녹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링컨은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저는 제 얼굴에 책임져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 얼굴에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 있는지 의구심을 가져보며, 더욱 하나님 형상을 닮은 자로 정진하기를 다짐해 봅니다.
오늘 우리가 던지는 작은 미소 속에서 우리의 이웃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6일동안 휴가를 갖습니다.
휴가기간엔 묵상 문자를 쉴까합니다.
그동안 모두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얼굴로 다시 대면할 날을 기대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