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4. 9. 15. 07:38

<창세기 29장 묵상-뛰는 놈 아래 엎드리는 놈>


야곱의147년 인생은 크게 4개의 시기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 슬하의 성장기 - 밧단아람의 라반 아래서의 나그네기 - 벧엘로의 귀향 - 이집트 망명기)

부모님 밑에서 형과 경쟁하며 속이며 살와 왔던 천 번째 시기를 보내고 

이제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시기에 그는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숙하지 못했었죠. 형과 경쟁에서 형을 속였고, 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속이고 복을 가로챘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시기인 밧단아람에서의 삶은 첫번째 시기의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속이는 자에서 속임을 당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쏘는 놈 있다는데… 야곱은 자신이 나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요셉을 쏘아 쓰러뜨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외삼촌 라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두 번째 시기는 야곱의 성숙기라 할 수 있습니다.

철부지 사기꾼 야곱이 영글어져 가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 장을 시작해서 야곱의 신앙과 인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숙해 가는지 우리는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그의 삼촌인 라반을 만나 자기 인생이 풀리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라반이란 사람은 야곱보다 더 교활하고 잘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라반의 수를 읽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형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뺏어 냈듯이,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딸 라헬을 사랑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할 계획을 짭니다. 

딸 라헬을 주는 조건으로 7년 동안 야곱의 노동력을 이용해 먹습니다. 7년이 지나자 둘째딸 라헬을 줘야할 기한이 찼습니다. 

라반은 못생기고 시력도 좋지 않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안경잽이(?) 큰 딸 레아를 신부로 줍니다. 

첫날밤 야곱은 레아인지 라헬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고 신부를 맞은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던 겁니다. (빰빰빰빰 빰 - 배경음악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1악장^^)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지요. 야곱은 라헬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시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라반의 집에서 일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부분에서 야곱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그가 바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기꾼 야곱이 사랑에 눈을 뜨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몸을 기꺼이 받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배우는 것입니다. 야곱은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야곱이 그동안 뿌린대로 거두고 있다는 겁니다. 상황이

뒤바뀐 거죠. 

무슨 말이냐면요. 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속이고 복을 차지했던 야곱이 이제는 시력이 좋지 않은 레아에게 속아 넘어 갔다는 겁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야곱은 7일만에 부인이 두 명이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아와 라헬 자매는 남편 야곱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이 자매간의 싸움을 보며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레아와 라헬의 경쟁은 자신과 형 에서의 경쟁을 상기시켰을겁니다.밧단 아람에서의 삶은 야곱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겁니다.형과 경쟁하고 아버지까지 속이며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뼈 아픈 반성이 있었을 겁니다. “아~ 내가 뿌린대로 거두는구나” 그러면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훈련을 했을 겁니다. 속임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억울한 지를 알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경쟁하는 삶이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도 알게 됐을 겁니다. 



이제 야곱은 더 성숙해 가면서 사랑하는 법과 함께 새롭게 배우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지사지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이지요. 

야곱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지사지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것은 훈련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우리를 성숙시켜 가십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지금 뿌린대로 내가 거둘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존중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야곱은 지금 이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의 삶 전체를 네 시기로 나눈다면 몇번째 시기를 살아가고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야곱처럼 저 또한 밧단아람에서의 성숙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30대를 지나며 연예를 통해 결혼을 통해 그리고 자녀 양육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연예와 결혼은 다른 사랑이었으며, 부부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은 분명 다른 사랑의 언어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사랑을 배워가야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인격적으로 깍아내야할 모난 성품들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것, 분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 신실하지 못한 것, 겸손하지 못한 것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인격적 결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것들을 다듬고 또 다듬는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상당한 시간동안 이 인고의 시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2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야곱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다룸을 받죠.

저도 평생 하나님의 다루심 앞에서 다 이루었다 하지 않고 겸손히 저의 모남을 인정하며 무릎 꿇고 싶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기보다, 뛰는 놈 아래 바짝 엎드리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 되기 원하는 것, 이것이 이 아침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샬롬.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