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4. 9. 15. 07:36

<창세기 25장 묵상 -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


배고픈 형님을 코너로 몰아 장자권을 빼앗아버린(?) 야곱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울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야곱의 어린시절을 묵상하며 조금 다른 각도로 그의 삶을 조명해볼까 합니다.


야곱의 운명은 기구했습니다.

그는 태어나기 전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그의 운명을 점지 받았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어린 자로 태어날 운명, 버금으로 살아갈 운명, 축복을 독차지 하지 못할 운명, 앞 선이의 발 뒤꿈치를 바라보며 걸어야할 운명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이죠.


야곱, 그는 매우 목적지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한 집념과 열정이 다른 이보다 뛰어났던 인물이죠.

아니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태생적인 기질이요 재능(?)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의 이름 또한 그의 목적지향적인 됨됨이를 너무나 잘 드러내 줍니다.

야코브란 '발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형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발꿈치를 잡아야했던 치열한 삶의 소유자 야곱입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앞으로 창세기에서 펼쳐질 그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지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내성적이었습니다. 늘 장막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장막에 머문다는 것은 어머니의 활동반경 안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영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반면 에서는 외향적이고 거친 남자였습니다. 

에서는 들에 나가 사냥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이삭은 첫째 아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야곱은 형의 약점을 정확히 분석했습니다. 

배고프면 정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형이 사냥을 하고 들어와서 완전히 탈진했을 때를 노립니다. 

마치 복싱에서 두들겨 맞아 정신 없는 상대를 코너로 몰아 부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에서는 장자권이 별거겠느냐며 붉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립니다. 

일단 모든 상황은 야곱이 원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왜 그렇게 장자권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그야 유산과 축복권 때문였겠죠. 장자는 유산을 두 배로 받습니다. 그리고 장자는 언약을 이어 받는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복을 받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개척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타고난 기질과 성질은 어찌하겠습니까?

그것을 탓하며 운명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여 자신의 운명을 뛰어 넘을지는 자신의 몫이요 판단인 것이죠.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서 공부를 무척 싫어하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은 책이요 숙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방학 숙제를 제대로 해서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려서 늘 듣던 말은 "너는 왜 그렇게 산만하냐?"였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10분 이상 버티기가 무척 힘든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서울대 법대가라고 서울 경(京)에 법 헌(憲)이라 지음 받은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이름 따라 대학을 법학과를 가긴했지만 그 법학은 저를 옥죄는 족쇄였습니다.

아예 대학 시절 공부를 놔버렸습니다.

그러던 제가 스물 아홉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생기자 책상머리에 앉게 되더군요.

선교지에 가서 목양할 양들을 위해 성경과 신학을 잘 배워야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지자 공부가 재밌어지더군요.

책상에서 엉덩이 떼지 않고 3시간까지 앉아 있기 일수였습니다.

제가 타고난 운명과 기질을 극복하는 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제가 에니어그램을 하면서 왜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고 집중을 못하는 산만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갖는 그런 기질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명확한 목적의식은 그 기질을 뛰어 넘을 수 있게 도와주더군요.


너무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야곱을 너무 파렴치하고 간사하게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다른 각도에서 야곱을 바라보았습니다. 

명확한 목적의식은 우리 삶에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며 넘어서게 만드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내 삶에 대한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자신의 운명을 극복할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