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묵상 - 웃음을 주시는 분, 눈물을 닦으시는 분>
사라에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물을 닦으십니다.
오랜 기다림으로 약속의 성취를 고대하던 자에게는 웃음을 주시고,
서러움과 목마름으로 울부짖는 자에게는 참 위로와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 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 주겠지(6절)”
사라의 말입니다.
‘웃음’이라는 뜻의 아들 ‘이삭’을 90세에 낳은 여인의 감격에 찬 고백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삶에 있으면 참 좋겠죠?
‘하나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주시는구나. 나를 보는이마다 내게 기쁘게 웃어줄거야’
참 좋은 말이지요?
한 사람의 웃음과 행복 뒤에는 다른 이의 아픔과 고통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까요?
사라의 아들 이삭과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나이차가 13세살이었습니다.
이삭이 젖을 떼고 걷기 시작하자 이 두 아들은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하지만 사라의 맘 속에 욕심이 생겼고 자기 아들에게만 온전한 상속을 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꼬드겨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쫒아 내게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의 제일 남단인 브엘세바를 거쳐 시나이 반도의 거친 광야길로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물가죽부대에 물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물이 떨어지는 만큼 하갈의 인내심과 희망도 바닥이 나고 있었습니다.
물이 완전히 떨어지자 하갈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아들을 가시덤블로 내동댕이치며 목노아 울어 버립니다.
“그는(하갈)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하나님께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부르며 말하였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셨다.(16-17절)”
아이의 신음과 울부짖음에 함께 아파하시며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따뜻한 분이라는 걸 이런 본문을 통해 깊이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그 그윽한 눈길에는 촉촉한 따스함이 어려 있습니다.
사라에게 웃음을 주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눈물을 닦으시고 갈 길을 밝히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그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듣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대면하는 우리 하나님은 웃음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로 웃게 하시며, 나로 눈물을 그치게 하시며, 나로 갈길을 밝히 보여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의 이야기를 묵상해 오며, 저의 삶은 귀한 본보기를 보고 있으며 희망을 갖습니다.
믿음의 가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구나.
수 없이 많은 연단과 담금질 속에 빚어지는 것이 믿음의 가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제가 이룬 가정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는 자녀들에게 훌륭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며, 하나님의 그 고결한 성품을 물려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월이 지난 후 자녀들 때문에 웃게 될 날과 든든해져갈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끝이 없어 보이는 양육의 고된 길을 오늘도 묵묵히 감당해 보려 합니다^^ 결말이 이상하게 끝나는 것 같네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하시는 분이시며 눈물을 닦아주시는 참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요!!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