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묵상 -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부부의 믿음은 하향평준화가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녀 총각들이 믿음의 사람 훈련된 사람을 만나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아브람의 이야기, 남자들의 이야기만 나오다 오늘 갑자기 여자들의 이야기로 전환이 됩니다.
아브람이 자녀를 낳는 문제는 아브람의 믿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 사라의 믿음도 필요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성장해 가는데 그에 맞춰 사라도 성장하고 있었을까요?
이 질문을 던지며 본문을 살펴보니 ‘글쎄…’ 올시다.
분명히 15장에서 하나님이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아브람은 그 말을 못 믿고 곧 바로 이런 실수를 한 것일까요?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사래가 오해한 것에서 시작되더군요. 15장 4절을 보십시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이 말을 들은 사라는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합니다. 사라는 속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아~ 내 남편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된다고 하는구나. 하나님이 나 사래의 몸에서 날 자라 하지 않고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라고 하시네. 그러면 내 여종을 시켜서라도 애를 낳게 해야겠다.’ 그래서 하갈에게 애를 낳게 한 겁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빠뜨리신 것 같아요. ‘네 아내 사래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거야”라고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정보를 빠뜨리십니다. 의도적으로 빠뜨리십니다. 이 정보를 빠뜨리신 이유는 사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기에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브람은 믿음이 성장하는 것 같은데 사래는 아직 더 성장해야 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래를 훈련시키기 위해 그런 정보를 누락시킨 것 같습니다. 사래는 당장 달려가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의도적인 정보 누락’ 이것은 우리네 삶에서도 맞닥뜨리는 하나님의 훈련방법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비전을 알려주시려면 명확하게 청사진을 보여주실 것이지 늘 알려주시는 정보가 조금 흐릿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긴가 민가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구요?
그것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주님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신뢰하느냐를 보시고자 하는 겁니다. 심지어 벼랑끝까지 몰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사래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날개를 펼친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를 얻어 타버린 것이지요.
본문의 두번째 포인트는 사래의 여종 하갈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친절함입니다.
하나님은 참 따뜻한 분이십니다. 좋은 분이시죠.
솔직히 이집트 여인인 사래의 여종 하갈은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단지 그가 아브람의 아기를 가진 것 외에는 어떤 가치도 없는 여인인 거죠.
여주인의 등살에 밀려 도망길에 오른 임산부 하갈은 홀몸이 아닌 몸으로 달려온 도망길에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겨우 샘을 찾아 목을 축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묻는 질문을 보십시오.8절입니다.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미 하갈의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하갈의 근본적 아픔을 치유하려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하갈은 자신의 사정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태서 쏟아 놓게 됩니다.
그 쏟아 놓는 과정이 치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그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임할 복까지 약속을 해주십니다.
감동을 받은 하갈이 그 샘의 이름을 “야웨께서 나를 감찰하신다”라는 뜻의 우물로 바꿔버립니다.
내가 가는 길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청사진이 아닌 나침반을 주실 때가 많습니다.
명확한 그림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시는 것이죠.
다음 발걸음에 대한 정보의 누락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시면서도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세심히 물어보시는 하나님을 오늘 우리가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들 가시나요?
그 길 위에서 나를 감찰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계시나요?
다음은 지오디의 ‘길’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입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에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나도 웃을 수 있을까..
오~지금내가..어디로..어디로..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살아야만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선 우리네 인생에 오늘 주님은 찾아오실 겁니다.
나를 감찰하시며 안으시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갈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 길이 벼랑끝이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믿고 신뢰하며 묵묵히 걸어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