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역사 그러니까 세계사를 기술해 오던 창세기의 저자는 갑자기 창세기 12장에서 한 인물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카메라의 줌을 잡아 당기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는 노아의 아들 셈의 족보가 길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 셈족의 후손이었던 아브라함이 소개 되면서 창세기 12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은 새로운 민족의 탄생을 선포합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탄생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셈족을 포함한 인간의 역사가 '아래로부터'의 족보로 생성된 민족이라면, 아브라함에 의해 시작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독특한 목적과 약속에 대한 순종으로 형성된 '위로부터 생성된' 민족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 지점이 구속사(救贖史-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와 세계사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이 중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왕성하게 이어져 오던 셈족의 족보는 갑자기 아브람에게 와서 멈춰 버립니다.
낳고 낳음의 수없는 반복속에서 사래의 낳지 못함(不姙)은 돌발적인 불협화음입니다.
자연 종족계승의 좌절을 의미합니다.
75세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던 부부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던 말씀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아이를 낳아 종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궁극적 목적을 둔 본토 친척 아비집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도록 아브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꿈은 그를 통한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꿈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세계관과 종족번식의 가치 위에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으로부터 탈출을 명령하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혈과 육의 유대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건설되기에 아브람은 가족적 유대로부터 창조적 탈출을 감행해야만 했습니다.
사래의 불임(不姙)과 씨족사회로부터의 이탈은 아브람을 무겁게 누르는 짐이었고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로 그를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믿음으로 산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아브람의 믿음 위에 새롭게 그 역사의 서막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약속한 복은 그 가정과 그의 씨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독점의 원리가 아니라 나눔과 유통의 원리로서 '복읜 근원'의 삶에 초대하고 계신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적인 불임(不姙)과 창조적인 분리(分離)에 대해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75세의 노인에게 하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인생의 불임과 생산하지 못하는 아픔들, 즉 열매 없는 공허함은 어쩌면 어쩌면 하나님의 복의 신호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아픔은 창조적인 분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의지하고 기대고 살아왔던 '본토 친척 아비집'은 무엇일까요?
거기로부터 탈출하여 분리되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으로 도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적인 분리에 따르는 모험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나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은 무엇일까요? 나의 안정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어울리지 않는 '본토 친척 아비집'의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과감한 탈출과 분리를 하지 않고는 아브람이 들어섰던 믿음의 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빨고 있던 세상의 달달하고 기름졌던 것들을 끊고 하나님이 먹여주시는 이유식을 받아 먹어야겠습니다.
창조적인 탈출, 창조적인 분리를 통해 참 믿음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