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3는 광야다??!!>
1. 모세의 삶, 광야 종합선물세트.
어제 예배를 드리며 문득
모세의 삶의 2/3가 광야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40세까지는 좋았다.
40~80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1차 광야기였다.
80~120세는 온갖 종류의 광야 종합선물세트의 2차 광야기였다.
2. 광야는 삶이었다.
모세에게 있어 광야는 일상이었으며 삶이었다.
그는 광야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았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의 전반기에 경험했던 미디안 광야에서의 삶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 전에 이미 광야를 이해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객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광야의 삶의 신학을 세웠을 것이다.
3. 원망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두 가지 반응.
광야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불평과 원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3일만에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의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반응하셨다.
삶과 직결되는 생계형 불평에 대해서는 기적으로 응답하셨다.
예를들면 물이 없다고 부르짖으면 반석에서 물이나고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기적을 주셨다.
하지만 욕심에서 나오는 탐욕적 원망과 불평은 징계로 응수하셨다.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로 대표되는 고기 욕심의 말로를 우리는 안다.
4. 온유함이 어떤 사람보다 뛰어났던 비결.
원망과 불평의 장소 광야의 가장 큰 기능은 훈련의 장소라는 것이다.
광야는 믿음의 삶들을 훈련하며 연단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모세는 40년의 미디안 광야삶을 통해 왕궁의 때를 벗고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는 거듭남의 경험을 했다.
광야가 그를 그렇게 훈련시킨 것이다.
광야를 한 번도 깊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랐다.
훈련은 원망과 불평의 때를 다 벗기게 한다.
모세는 광야 훈련을 통해 온유함이 지면의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게 되었다.
5. 축제의 광야.
광야는 사람을 단순하게(simple) 만든다.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광야다.
그래서 광야에서 사람은 단순해진다.
하늘만 쳐다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광야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광야에서 매일 매일 축제가 벌어진다.
아침마다 만나를 주으며 하나님의 공급을 묵상하며 찬양한다.
신발은 헤어지지 않고 옷은 찢어지지 않는다.(신명기 8장)
그야말로 기적의 연속이며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의 연속이 광야에서 펼쳐진다.
그러기에 광야는 더이상 죽음의 장소가 아닌 축제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6. 광야를 통해 주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와 그림의 "광야를 지나며"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그 노래의 후렴 가사가
"주는 네 광야를 통해 주가 하나님이심을 들어내시리"이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인생의 2/3는 광야다.
오늘도 묵묵히 광야의 삶 가운데 하나님만 붙들며 걷기 원한다.
온유함이 모세보다 더 승해지기를 소망하며...
광야를 묵묵히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