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3. 10. 25. 08:25

고린도전서 7장은 엄밀히 말해서 바울 자신의 결혼관과 가정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바울 자신의 관점이라는 거죠. 한마디로 얘기하면 결혼 안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미혼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전제는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의견이고 그에 따른 권면이라는 겁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라 하여 자신의 의견이라 선을 긋습니다.

즉,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명령이 아니라 단순한 권면이며 목회적 권고에 가깝다는 겁니다.

바울 자신이 미혼으로 살았기에 이런 권고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자로서 가족에게 봉사하며 생기는 수고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웠을 겁니다.

그의 표현대로 세상 일에 대한 염려가 훨씬 줄었고,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자식들을 섬겨야 하는 쓸데 없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에서 그런 생활방식(life style)이 매우 맘에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결혼한 제가 바울이었다면 또 다른 권면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결혼생활하면서 어떻게 성화되어 가며 어떻게 치열하게 주님과 가족을 위해 성숙되어 가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권면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바울의 의견 중에 하나야~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목적을 담고 있었기에 성경의 한 부분으로 고린도전서 7장에 실리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여기서 고민해 볼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미혼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미혼(未婚)이란 용어는 결혼(結婚)이라는 목적과 정상적이고 완성된 삶의 형태를 기준으로 결핍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결혼이 정상이고 결혼하지 않는 것은 뭔가 모자라고 아직 목적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라는, 결혼중심문화에서 나온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바울은 노총각에 찌질이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남자가 결혼을 못했으면 아니 안했어도 그는 무능력해서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찌질이란 것이죠.

여성은 어떻습니까? 여성이 결혼안하는 것은 이기적이어서 그렇고, 까져서 그렇고, 책임감이 없어서 그렇다고 치부합니다.

이것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압박감이며 폭력이기까지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미혼이란 말은 너무 폭력적인 말이죠.

그들은 명절 때면 언제까지 "너 언제 결혼할래?"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요즘 미혼이 아닌 "비혼(非婚)"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의견들이 학계에서 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에 찬성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상태가 결핍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아픔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나름의 목표가 있는 것일 수 있기에 존중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뭔가 결핍됐다는 느낌과 의미의 미혼보다 비혼이란 표현을 우리도 써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홀로서기를 결심했던 바울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이 시대에 그런 이유에 의해 혼자 살아가는 비혼자들이 존중받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고결한 부르심에 순응하는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2. 가톨릭 사제가 아닌 목사로 살아가는 기쁨??!!

저는 바울이 결혼했다면 고린도전서 7장이 조금은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결혼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내용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가톨릭 사제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부양할 가족도 없고, 그에 반해 기독교 목사보다 훨씬 높은 사례와 존경을 몸소 받으니까요.

그만큼 의무와 책임이 개신교의 목사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겠죠. 한마디로 그들은 자유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부러움은 극히 적은 것이고 결국 안타깝고 짠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됩니다.

그들의 비혼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 것이라면 참 슬프고 짠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가정을 이루면서 누리는 귀한 것들을 누릴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가족을 섬기면서 '성화'되어가는 필수 코스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저는 감히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결혼생활하면서 아내와의 공동생활과 아이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저의 밑바닥을 경험합니다.

제가 얼마나 모자라고 부족한 자인지를 가정이란 공동체 생활을 통해 깨닫고 변화시키려고 몸부림 칩니다.

이것은 가정을 꾸린자만이 누리는 성화의 유익이라 생각합니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섬겨가는 이중고를 감내하면서 이루는 사역의 열매와 인격의 변화는 싱글 사제의 그것보다 훨씬 값지고 귀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신교 목사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

훨씬 하나님께 집중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더 고수라는 뜻으로 해석되지 않을까요?

정말 영적인 고수가 되고 싶습니다. 가정을 잘 꾸리면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리하면 결혼했든 결혼하지 않았든,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비혼이든 결혼이든 그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닮아가며 하나님을 알리는 데 사용된다면 뭐든 좋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비혼자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다가가지 않길 바랍니다^^

굿모닝입니다.


김경헌 목사 올림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