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묵상 -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도대체 알기나 하는건가?>
어제 개그맨 윤형빈이 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나봅니다. 격투기에 별 관심이 없지만 아침에 검색을 해보니 윤형빈이 케이오 승을 했다는군요. 마가복음 12장의 사건이 꼭 링 위에서 맞장 뜨는 장면인 것 같아 꺼낸 말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2장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대적자들과의 미묘한 신경전을 묘사한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이란 크게 네 부류입니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제사장들, 서기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포도원 농부비유를 통해 선빵(펀치)를 날립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겨 놓고 멀리 갔는데, 이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구타하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여버린 이야기입니다. 농부로 비유되는 예수님의 대적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펀치였습니다. 대적자들이 흥분하여 차례대로 몰려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질문의 의도는 트집을 잡아서 예수님을 넘어뜨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13절에는 바리새인들이 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지를 묻고 있습니다.
18절에는 사두개인들의 공격인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이들이기에 예수님과 부활에 관해 논쟁을 합니다. 28절에는 서기관들이 몰려 와서 율법에 관한 질문으로 덤벼듭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완승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지혜와 위엄 앞에 나가 떨어집니다.
예수님 앞에서 이들은 모두 하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통달하셔서 그들의 정곡을 찌르고 그들의 실체가 허당이란 것을 드러냅니다.
2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대적자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대적하기 위해 성경이니 율법이니 운운하면 다가오지만 너희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러는 거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두 가지를 몰라도 한참을 모릅니다. 그것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로서 어떤 것에 중점적으로 관심을 갖고 알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이 두 가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한 맥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행하다 보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또한 성경을 가까이 하다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실 때,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하심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무엇을 행하실 것이며, 나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닮아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성경을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 한 명이 예수님께 다가와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시죠. 29절부터 31절까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지요.
“하나님 사랑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정말 최대한 간단히 한 단어로 줄이면 ‘사랑’입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랑의 근본 바탕을 두고 행해집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성경의 사랑의 정신을 알지 못하면 성경이 난해한 책이며, 성경만큼 이해하기 힘든 책도 없습니다.
본문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렙돈을 헌금으로 전부 드린 과부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계산법이 세상의 계산법과는 너무 다르기에 도통 이해하기 힘들죠.
많이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일부를 떼어 많은 돈을 헌금했고, 극심하게 가난한 차상위 계층의 한 여인이 자신이 가진 전부인 동전 두 개를 헌금했는데 예수님 보시기에는 과부의 헌금이 가장 많이 했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과부가 가진 사랑의 총량(總量,total amount)이 다른 이들이 드린 사랑의 총량보다 많다는 것이지요.
여인은 자신이 드릴 연보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쓰여진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렙돈 전부를 드렸던 것이지요. 그 녀의 사랑은 자신의 가난을 초월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오로지 사랑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녀의 사랑이 가장 컸던 것이지요.
그녀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던 겁니다.
두 렙돈을 드린 여인의 삶 앞에서 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나는 성경을 아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능력을 도대체 아는 사람일까요?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거늘, 제 삶이 꽹과리 딱 그것인듯 합니다.
성경을 더 알아야겠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 깊이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