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을 시엄씨로 세웠습니까? -로마서 14장>
로마서 14장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음식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 때문에 서로 비판하며 판단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모두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배움의 정도가 다르고 먹고 입어온 문화가 다르기에 서로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어떤 공동체나 마찬가지죠.
저는 남도에서 자라왔고, 남도의 음식문화에 길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남도 음식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제 기준에 서울 김치가 젖갈도 적게 들어가고 매운 맛과 강렬한 맛이 떨어지더라도 서울 사람들이 느끼기엔 서울 김치가 너무 맛있는 거죠. 서울 분이신 장모님이 담궈 주신 김치를 한 때 입에 안 댄적도 있었죠. 하지만 아내는 그 김치를 너무 좋아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김치가 이게 뭐야~ 어떻게 먹어?"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 incorrect)이 확실이 구분돼야 하는 거죠. 다른 거지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할 때 공동체는 세워져 갑니다.
"3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 먹는 사람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가려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4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 넘어지든 그것은 그 주인의 소관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하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13장3-4절)"
심판하고 제단할 권리는 주인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고 심판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자빠져서 떡을 먹든 누워서 떡을 먹든 우리가 관여할 바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다른 이를 향해 시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 형제 자매의 시엄씨로 세운 겁니까? 누가요?
그가 누워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서 있게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공동체(교회든 가정이든 동아리든) 구성원이 모두 한 방향과 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는지 그 양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다음 말씀이 그걸 나타내 줍니다.
"7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목적이 중요하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느냐는 주님이 판단하신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서는, 우리 사랑방에서는, 우리 가정에서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누구의 종이냐?'를 따져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와 서로의 성장을 위한 일에 관심을 두었으면 합니다. 제발 행동양식을 가지고 시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심판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
주님을 위해 시어머니가 되는 걸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가정에서 저는 이것을 철저히
적용해 볼랍니다. 난 아내의 시엄씨가 아닙니다^^
19그러니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 20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음식 때문에 그르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아멘~
참고로 시엄씨는 전라도 사투리로 '시어머니'라는 뜻입니다^^
묵상2013. 10. 16.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