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장묵상 - 무익한 종>
요즘 북한 지하교회 실정을 그린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원래 제목은 ‘사도(Apostle)’라고 합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도란 하나님이 복음 전파를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북한 지하 교회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사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하는 지은이의 의도가 담겨있는 제목인 거 같습니다.
1. 믿음의 양보다 질.
5-10절까지의 말씀은 전도여행으로 파송되었다가 돌아온 사도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전도로 보냄을 받았던 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는되 되지 않자 약간은 실망섞인 마음으로 주님 앞에 돌아와 푸념을 늘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으니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을 말씀하시며, 믿음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 믿음은 겨자씨만한 양이 있더라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적당한 물과 햇빛과 온도가 있으면 싹이 움트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기도의 양이나 믿음의 양이 적다기 보다 기도의 질과 믿음의 질의 문제 콸러티의 문제는 아닐까요?
2.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
주님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전도여행 후 칭찬 받고자 하는 욕망를 간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처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들의 믿음의 싹이 자라게 막아 버린 것은 마음 곳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나는 유익한 존재야'라고 생각하는 인정욕구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인정욕구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본질과 임무를 도둑질 해 가 버립니다.
보냄을 받은 자이지 인정받는 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칭찬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종은 그냥 주인을 위해 충성 봉사하는 겁니다. 주인님 상차려 왔으니 칭찬해주시죠~ 주인님 마당 쓸고 왔으니 잘했다 해주십시오~ 이러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가정과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이었고, 또한 주님의 보냄을 받은 자였습니다.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었던 것이죠.
그들은 충분히 격려받고 인정받고 높임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익한 종이라는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내 안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정욕구는 무익한 종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집어 삼켜버리려 듭니다.
또한 참 믿음의 씨앗이 자라는 것도 막아 버리구요.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주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십시오. 모든 존귀를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은 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러한 겸손한 고백만이 믿음의 참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삶의 태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