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2014. 9. 15. 08:05

<누가복음 16장 묵상 -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얻으라>


본문 1-13절에는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고 회계장부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불의한 청지기가 등장합니다. 이 본문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해구절( 難解句節) 중에 하나입니다. 주인의 돈을 자신 맘대로 사용하고 장부를 허위로 꾸민 불의한 청지기인데 어떻게 주인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고 영악한 이해타산에 몰두합니다(3절). 그런데 그의 거짓말은 비난받기보다는 그의 주인까지도 칭찬하는 “지혜로운 행동”으로 간주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우스꽝스럽고 불합리하여 보이는 청지기에 대한 평가는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이란 말은 종말론적인 틀을 가지고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다음에 등장하는 이야기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도 종말론적인 상황 설정하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가진 재산은 하나님이 맡겨 놓은 위탁재산일 뿐 그것이 가장 선하게 사용되려면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이 핵심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고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이 논지를 뒷받침 해주는 예입니다. 


불의한 청지지는 주인의 재산을 유용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사실(査實 )한 후 조만간 그를 해고할 것이라고 통보하면서 회계장부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그 불의하고 부정직한 청지기가 갑자기 지혜롭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낱낱이 불러다가 옛 채무증서들을 파기하고 새 채무증서를 써 줍니다. 조만간에 직장을 잃을 때에 자기에게 호의를 입은 채무자들이 그를 영접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낌없이 선심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돈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태의 전말을 다 파악한 주인은 예상을 뒤엎고 그의 교활하고 영악스러운 행동을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칭찬합니다. 여기서 그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는 그가 주인을 잘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재물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 모두 불의한 재산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부자의 재산은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한 재산이 아니며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가치도 아닙니다. 어떤 부자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국가의 법과 제도의 지원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총으로 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땀과 노동으로만 부자가 된 것이 아니기에 자신들이 배타적으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하나님처럼 숭배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적 종말론은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사용할 수 없는 날이 오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재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재물은 없어질 날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불의한 청지기는 종말론적인 이해타산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였고, 친구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사용하여 사람을 샀고 친구를 샀던 것이 종말에 가서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세상의 재물을 거룩하게 낭비하여 우정을 쌓는 사람들은 영원한 집으로 초청되며 영접될 것입니다. 돈의 신적 위력에 홀린 사람은 사람의 가치를 보지 못합니다. 신적 위력이란 말은 돈과 하나님이 동등한 위치라는 겁니다. 돈에 마음이 팔리면 사람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은 더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도 버리고 하나님도 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둘 다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눈의 초점이 한 곳으로 모아 지지 두 곳 모두에 모아지지 않듯, 돈 아니면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돈보다는 사람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억만년 살면서 이 재물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곧 끝이 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죠.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음을 14절 말씀이 잘 말씀해주고 있죠.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돈의 신적인 위력, 즉 맘몬의 위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돈 보다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람을 얻기 위해 돈을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면입니다. 돈을 위해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돈을 이용하느냐?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의 신앙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재물을 거룩하게 낭비하여 친구를 얻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물을 잘 이용하여 구원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얻는 깨달음입니다.



  

Posted by sper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