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164페이지의 내용을 복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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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라는 단어는 본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는(Zaehlen) 손가락이다. 디지털 문화는 세는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Erzaehlung이다. 역사는 세지 않는다. 셈은 포스트역사적 범주다.
트윗도 정보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타임라인도 삶의 역사 또는 전기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타임라인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다. 티지털 인간은 끊임없이 세고 계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다.
디지털은 수와 셈을 절대화 한다. 페이수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적인 것, 셈하기, 셀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된다.
심지어 애착과 호감도 '좋아요'의 형식으로 세어진다. 서사적인 것은 급격히 의미를 상실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셀 수 있게 가공된다. 그래야만 성과와 효율성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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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의 갯수로 인기가 가늠되고 그 인기가 인격인 것 마냥 살아가는 사람들, 디지털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허상이다.
한병철 선생님의 투명사회 26쪽에서는 '좋아요'에 대한 철학적 비평을 이렇게 늘어 놓고 있다.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보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대량화는 경제적 가치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부정적인 판정은 커뮤니케이션을 손상시킨다. '좋아요'가 '싫어요'보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는 것이다.
거부에 담긴 부정성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용성이 없다.
투명성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는 다른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립하고 관철한다. 그점에서 진리는 부정성이다. "
5년전부터 페이스북을 하고 있지 않지만, 페이스북을 하더라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이유를 이글에서 발견한다.
모든 것을 샘과 계산으로 바꿔버리는 디지털화된 소비주의 사회를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