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과 작품들
self-value에 대한 예화
speramus
2010. 2. 12. 11:09
조엘 오스틴의 팟케스트를 즐겨 듣습니다. 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며
성경 본문에 관한 깊은 해석보다 교훈적인 설교, 주제 설교 위주로 간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여러 번 들으니 주제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 세워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데는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가르치는 은사가 있더라구요. 무엇보다 적절한 예화사용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존감에 관한 설교였는데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은 우리의 주인(master),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예화는 손수건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은 8$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엘비스 프레스리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이다.
아마도 800$은 훨씬 넘을 것이다.
이 손수건에 루비나 보석이 박혔기 때문인가? 아니다.
내 손수건과 차이가 무엇인가? 이 손수건에는 그의 땀이 묻어 있다.
누구의 땀이 있느냐에 따라 그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예화는 나무 예화였습니다.
첫째 나무는 리스닝이 잘 안되서 그냥 돌무화과 나무라 하죠. 둘째 나무는 참나무, 셋째 나무는 소나무였습니다.
이들 나무는 각자가 큰 꿈이 있었습니다. 크게 사용받고자 하는 꿈이었죠.
돌무화과나무는 보석상자가 되고 싶었어요.
세상에 소중한 보석들을 자신 안에 담아 두고 싶었죠.
그런데 나무꾼이 와서 그 나무를 베어 여물통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둘째 나무인 참나무는 큰 배가 되어 큰 바다를 항해하며 왕을 태우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이 와서 그를 보잘 것 없는 물고기 잡는 데 사용되는 피싱보트로 만들어 버렸어요.
셋째 나무는 높은 언덕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조각물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무꾼은 소나무를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버렸어요.
몇 년이 흘렀죠.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누우실 곳이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모는 돌무화과나무로 만든 여물통에 예수님을 뉘었어요.
그 돌무화과나무는 그 어느 보석보다 소중한 분을 그의 몸으로 품을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흘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셔야 했어요.
예수님은 참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건너셨답니다.
참나무는 왕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대신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바다를 건널 수 있었어요.
또 몇 년이 흐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어요.
로마 병사들은 뗄감으로 쓰려고 베어 둔 소나무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어요.
예수님은 그 소나무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셨고,
그 십자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답니다.
비록 초라한 우리이지만 질그릇같은 우리이지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우리 삶이 너무나 가치가 있어진다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