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목회칼럼, 잘 떠나 보내기
이별은 늘 아픕니다. 로체스터라는 도시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유입이 되어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떤 이들은 떠나 갑니다. 떠나 가는 이들도 서운하겠지만 떠나 보내고 남아 있는 이들의 아픔은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계속 떠나 보내야 했던 기억들이 쌓이다 보니 이별의 아쉬움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이별을 맞이 하게 되어 더 아픈 것이겠죠. 이번 여름에 로체스터와 다하나교회를 떠나는 교우의 가정이 적잖습니다. 다하나교회같은 이민 교회에서 정들었던 교우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정들었던 형제 자매들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어쩌면 잘 떠나 보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지도 모릅니다.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과 아픔이 크겠지만 파송이라 생각하면 그나마 기쁨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실 때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자의식이 가득했죠. 보내는 행위를 선교(mission)라고 칭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고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이었습니다. 다하나 교회를 떠나가는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남아 있는 교우들로부터 파송을 받고 떠나가는 선교사 가정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게 된 이들이 이제 곳곳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로 살아간다면 떠나보내는 것이 슬픈 일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듭니다.
룻기 1장을 묵상하며 잘 떠나보내는 것도 사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룻기 1장에서 나오미, 룻, 오르바 라는 세 여인이 주인공입니다. 이 여인들은 보금자리를 찾아 정든 곳을 떠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인생들입니다. 둘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모압에 남기로 하고 맏며느리와 시어머니만 모압을 떠나 유다로 가게 됩니다. 오르바의 관점으로 보면 홀로 남아 두 사람을 떠나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르바의 결정을 탓하거나 비아냥 거리지 않습니다. 오르바의 결정 또한 아름답습니다. 나오미와 룻도 오르바를 진심으로 축복하며 그녀의 안식을 빌어줍니다. 오르바는 룻과 나오미의 진심 어린 축복을 받으며 마음 편히 그들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고, 그녀 또한 자신의 어미 집에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됐을 겁니다. 잘 떠나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닐곱 가정이 한 꺼번에 교회를 떠나게 되니 걱정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로 채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룻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로를 향한 진정한 축복과 공감이 전제된 이별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우리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위기일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곳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주의 교회의 아름다운 향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새롭게 펼쳐질 다하나교회의 이야기의 새 쳅터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