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8일 목회칼럼, 성령강림절에는 룻기를 읽어요
어떤 계절과 절기가 되면 생각나는 책이나 문학작품들이 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줘야 합니다. 7월이 되면 웬지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가 떠오릅니다. 가을이 시작되고 찬바람이 불면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절기와 계절에 따라 읽어야 하는 성경 말씀이 있었다고 하죠. 유대인들은 그들의 5대절기에 각각 그 절기에 맞는 성문서(시가서)의 책들을 낭독하였습니다. 성문서 중에서도 이 다섯 개의 성경을 따로 모아서 ‘성문서 오축(五丑, Five Megilot)’라 불렀습니다. 다섯 개의 두루마리라는 뜻입니다. 유월절에는 아가서, 오순절에는 룻기, 솔로몬 성전 파괴일인 아브월 구일에는 예레미야 애가, 장막절에는 전도서, 부림절에는 에스더서를 읽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이자 오순절을 기념하는 주일이니 룻기를 낭독해야겠군요. 먼저 룻기가 어떤 책이고 룻기를 왜 오순절에 읽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룻기 낭독이 더 흥미로워지겠죠?
한글 성경은 구약성경의 헬라어버전인 ‘70인경(Septuaginta)’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원래 히브리 성경의 순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헬라어 성경과 라틴어 성경에서는 구약성경의 순서를 시간 순서로 배치하려고 하다보니 히브리 성경과 순서가 달라지게 된 겁니다. 히브리 성경에 룻기는 잠언과 아가서 사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 31장에는 “지혜로운 여인”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현숙한 여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히브리말 ‘에쉐트 하일’인데 능력있는 여인이란 뜻입니다. 가솔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보는 그런 여인으로 소개되어 있죠. 그리고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 두 책 사이에 룻기가 끼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룻기가 현숙한 여인의 표상으로 룻을 소개하고 있고, 룻과 보아스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면에서 잠언과 아가서 사이에 위치해 있는 것이죠. 룻은 실제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부양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남성들이 즐비한 밀 타작마당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룻이야말로 현숙한 여인의 표상이 될 수 있습니다. 룻기를 오순절에 읽는 이유는 룻기의 배경이 오순절에 이뤄지는 밀의 추수시기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은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 인정과 친절이 강조되는 절기입니다. 룻기야 말로 이 절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룻기는 인애(헤세드)를 보여주신 하나님과 인애를 베푸는 사람들(룻, 나오미, 보아스)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돌봄과 사랑, 우정, 다른 사람에 대한 비상한 배려와 책임감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과 만나 상실과 결핍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온전히 회복되고 치유된다는 복음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성령강림절에는 룻기를 통해 하나님의 인애와 이웃 사랑의 가치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