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다하나교회 목회칼럼

다하나교회 목회칼럼(11/20/2022) 배를 하나님으로 삼을 것인가?

speramus 2022. 11. 30. 02:37

빌립보서 3장 18-19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말하면서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배고픔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의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으로 보아도 될 정도로 배고픔은 인간들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할 때 첫 시험이 돌덩이를 떡덩이로 만들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진로 문제, 이직 문제, 질병의 문제 등 우리 삶에 경험하는 많은 시험들이 결국에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우리를 염려 가운데로 인도하곤 합니다. 어릴 적 배고픔이나 결핍의 경험들은 우리의 염려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하죠. 저는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가 하나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와 하나님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나를 비워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결국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비우는 데 있습니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의 욕망으로 바꾸는 여정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나를 비우는 삶은 영적으로 허기지게 만들어 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I am who I am) 자라고 자기를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궁극자이이시며 궁극적인 존재(Being)이십니다. 신앙은 궁극적인 존재자이시고 ‘the Being’이신 하나님을 찾는 여정이지요. 그런데 육신의 허기와 배고픔은 우리들로 Being 이 아니라 ‘beings'를 찾게 만듭니다. 피조된 존재인 beings들이 Being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을 ‘우상숭배’라 합니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대표적인 수단인 돈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돈은 우리의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퇴근하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봉지만 바라보고 아빠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듯, 우리 또한 하나님을 그렇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적과 수단이 바뀌면 안된다 순서가 바뀌면 안된다 경고하셨죠. 수단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되는 인생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