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고 직면하라> - 오늘 아침 새벽예배 설교(삼하 13장전체)
본문 : 삼하 13장 전체
제목 : 가면을 벗고 직면하라.
13장은 본격적으로 다윗 왕가에 찾아 든 칼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다윗 왕가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불가피한 방법입니다. 히브리서 12장 7-8절 말씀입니다.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친히 징계를 허락하십니다. 다윗 왕가에 내려진 징계는 하나님의 채찍질이며 다윗 왕가가 정신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더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지요. 그런데 징계를 받느냐 안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징계를 어떤 태도로 받아드리고 어떻게 사후 처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다윗과 다윗의 아들들은 성숙한 태도로 임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인 다말을 짝사랑하여 상사병까지 이르게 됩니다. 못된 친구 요나답의 계책을 듣고 암논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여동생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결국 그 누이 동생을 강간하고 차버리죠. 이것에 대해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이 개입하여 다말의 입을 막고 복수의 칼을 갑니다. 2년 후 잔인한 피의 복수가 벌어져 압살롬이 도망간다는 줄거리입니다.
13장 1절 말씀은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범죄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죠.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표현이지요. 다윗의 성범죄가 있은 후에 그리고 다윗의 살인 범죄가 있은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러한 일은 다른 말로 다윗이 저지른 범죄가 동일하게 대물림 되어 일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저지른 성범죄가 암논의 성범죄로, 그리고 살인죄가 압살롬의 살인범죄로 그대로 대물림 되어 다윗을 괴롭히고 있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들을 보면 부모의 것이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김새는 말 할 것도 없구요 습관이나 성품도 대물림됩니다. 아빠가 술주정을 하면 아들이 그것을 그대로 닮구요. 아빠가 책을 좋아하면 아들도 책을 좋아하구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대로 대물림이 되죠. 제가 집에서 개미를 손으로 짖이겨 죽였더니 제 아들이 개미만 보면 손으로 막 누릅니다. 살생의 대물림이죠^^ 암논과 압살롬의 범죄는 다름 아닌 다윗의 범죄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죄를 저지르는 동기나 죄의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좋지 않은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뭐뭐하는 척하는 자세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리우고 표현하지 않고, 대화로 풀지 않고 쌓아 둔 채, 폭력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바로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먼저 암논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 가운데 자신의 이복누이를 연모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고 고민을 알리는 방법을 취했어야 하는데, 암논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고 차단한 후 자신 안에 숨겨진 짐승스러운 욕정을 사랑으로 믿으며 폭력적으로 삐뚤어진 사랑을 표현합니다. 병든 채 하다는 말이 5절 6절에 두 번이나 등장하죠. 병든 척하지만 병들지 않았고, 사랑한 척 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진실되지 못한 모습입니다.
압살롬은 어떻습니까? 그 누이의 마음을 그가 조금이나마 헤아린다면 그렇게 반응하면 안됐습니다. "너 가만 있어, 뚝!!! " 그렇게 한다고 다말의 상한 감정이 치유가 됩니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정(이나영분)이 엄마를 거의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유정이 중학교 시절에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울며 엄마에게 찾아 왔는데 엄마는 되려 이나영을 나무라고 뚝 그치라고 다그칩니다. “니가 어떻게 처신했으면” 이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지혜로운 방법입니까? 상한 감정을 다 토해 내어 울게 하고 들어주고 아파하는 누이를 안아 주지 못할 망정 “뚝 그쳐, 내가 처리할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다말의 감정이 처리가 됩니까? 20절에 다말이 그 이후에 어떻게 지내는 지 보십시오. 쓸쓸하게 외롭게 처량하게 지냈다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자신의 상한 감정을 토해 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외롭게 지냈다는 겁니다.
다윗 또한 암논과 다말의 사건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암논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는 암논에게 죄에 합당한 징계를 내렸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냥 분노하고 맙니다. 암논에게 꾸지람을 했다는 말조차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가문에 등장한 치욕적인 간음 사건을 은폐하고 덮어 넘어가려 한 것이지요. 이것은 압살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압살롬의 분노는 암논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아버지 다윗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습니다. 압살롬 또한 복수의 칼날을 가슴 깊이 숨긴 채, 감춘 채 괜찮은 척 했습니다. 암논과 아버지 다윗에게 가서 누이의 사건을 직면하며 풀어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압살롬의 분노는 다윗과 암논을 정조준하며 자라기 시작한 것이지요.
오늘 주인공들 모두다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괜찮은 척, 다 해결된 척, 아프지 않은 척, 문제 없는 척하며 지냅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습니다. “가면을 벗고 직면하라!!” “가면대신에 직면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운하지 않은 척, 마음이 상하지 않은 척 하다 뒤에서 온갖 호박씨는 다 까대고, 증오의 칼을 가는 모습을 종종 우리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무슨 척 하는 모습은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건강합니다. 상처 받았으면 하나님 앞에서 상처 받았다고 아뢰고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이 필요 합니다. 관계가 틀어졌으면 그 사람과 직면하여 내가 어떤 부분에서 아프고 괴로운지 말하고 풀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혜롭게 풀어가야겠지요. 잘 못하다가는 더 악화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서운하지 않은 척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만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면을 벗고 문제와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하나님과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상한 감정과 직면하십시오. 가면을 벗고 자신의 아픔과 직면하십시오. 오늘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어떤 상한 마음이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제가 그것에 직면하여 그것을 이 아침에 해결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제가 해결해야할 죄악이 무엇입니까? 그 죄와 직면하여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게 하십시오. 제가 해결해야할 묶인 관계가 누구와 있습니까? 그것에 직면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가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직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