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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가나는 아프리카의 가나라는 나라가 아닌건 아시죠? 썰렁하네요^^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작은 시골 동네 가나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첫 시작이 사흘째 되던 날이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은 본문이 앞의 사건과 연결이 됐다는 말입니다. 바로 앞 장인 요한복음 1 5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한복음을 쓴 요한은 요한 복음 1장에서 제자를 부르는 사건을 소개합니다. 50절 말씀은 특별히 그 제자중 나다나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한 후 곧바로 큰 일, 즉 큰 표적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죠. 가나의 혼인 잔치는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을 알아본 것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겁니다. 내가 너를 제자로 부른 후 너는 이 보다 더 큰 일을 볼거라는 암시죠. 이 암시 바로 뒤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표정을 보니까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아요~" 라는 표정인데요.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물로 얼음을 만드는 것도 어렵잖습니까? 물 한 대접 받아 놓고 입김을 아무리 불어 넣어 보십시오. 물이 얼음이 되나? 아니 물이 1도도 안 올라 갈 겁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는 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은 요한 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가나 혼인잔치에 대해 요한이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했다는 걸 말해줍니다. 첫 번째 표적이면서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요한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록하였을까요? 다른 말로 가나의 혼인잔치의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제자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놀라운 표적

첫 번째로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본문의 가나 혼인잔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표적이었을까요? 4지선다로 문제를 낼테니 맞춰보세요^^ 1번 예수님의 어머니 2번 결혼식 하객 3번 예수님의 제자 4번 답 없음. 문제가 어렵나요?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고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시며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세요. 1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모으셨습니다. 3일 후에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갈릴리에서 이적을 한 번도 행하시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죠. 아마도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더욱 그 자리에 초대됐을리 만무합니다. 분명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도 함께 가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겠어요? 예수님이 이 포도주 표적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구절이 11절에도 등장하죠?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우리는 이 표적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이 표적이 제자들을 위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위해 기적과 이사를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실 겁니다. 무엇 때문에요?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하나님은 놀라운 표적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내실 겁니다. 세상에서 어떤 크고 기묘한 일을 경험하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표적이란 증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증거가 내 삶에 놀랍게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겁니다. 단순히 4대 성인 중 한명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초월적인 능력까지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과학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초월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3.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본문을 통해 얻어지는 교훈은 혼인잔치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주어집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첫 이적이 혼인잔치에서 이뤄졌다라고 말해줍니다. 혼인이 뭡니까? 결혼해 보신 분은 아시죠? 혼인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나의 삶을 버리고 새 짝을 만나 또 다른 한 몸을 이루는 놀라운 일입니다. 결혼해보니 근심 걱정만 쌓이고 애물단지들만 늘어나더라는 표정이신대요 ^^ 부부가 하나되는 신비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혼인잔치에서 그 분의 첫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그 놀라운 비밀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로마서 7장에는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한 여인이 사별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에 비유를 합니다. 남편이 죽으면 그 전 남편의 법에서 해방되어 다른 남편에게 가도 음녀라 칭함을 받지 않는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 전 남편은 율법이고 새로운 남편은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분명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 예수님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율법이 지배하던 그런 삶에서 이제 새로운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새로운 삶, 은혜의 삶으로의 변화가 일어 날 것이라는 것을 가나 혼인잔치를 통해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2 19-20절은 이 비밀을 이렇게 말해 줍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시집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 생활과 사고 방식을 모두 다 죽이고 남편 되신 예수님께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놀라운 삶의 경험이 여러분 삶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4.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은 삶의 완전한 변화이다.

    마지막 세 번째, 본문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혼인잔치의 핵심인 포도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 꺼리는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욕먹습니다. 경상도 잔칫상엔 문어가 빠지면 욕먹죠. 충청도, 강원도, 이북에서는 뭔가요? 이스라엘의 결혼잔치에서 포도주가 빠지면 욕 먹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결혼식에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와버렸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좀 나서서 뭘 좀 해 보시라고 부추겼습니다. 믿음이 참 많은 여인이죠?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아니잖습니까? 하면서 한 번 튕기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하인들을 데리고 오죠. 그리고 하인들에게 명령합니다. 예수님이 시키는 것은 잔 소리 말고 뭐든 다 하라구요.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시킨 것이 무엇입니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아귀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졸린 것 같아 성경퀴즈 나갑니다. 성경책 보시지 마시고 항아리는 몇 개가 놓여 있었나요?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의 용도는 뭡니까? 뭐에 쓰는 물건인고? 요강이었나요? 된장 담궈 놓은 항아리였나요? 아니죠?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법이 있었어요. 바리새인들이 이 전통과 나름의 법을 엄하게 따르죠. 그들은 성경보다 이 전통과 법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따랐어요. 정결하게 손을 씻기 위해 준비됐던 항아리, 그 항아리는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따르던 옛 신랑인 율법이었으며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항아리 안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꿔 버리는 표적을 나타내신 겁니다.

 

물이 포도주가 됐다는 것은 단순한 화학적인 변화 이상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죠. 완전한 변화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변해 버리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냥 착한 사람이 됐다 뭐 이 정도의 변화 이상입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It's a New creation!!!

 

성경에서 물은 보통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령을 상징하죠. 정결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상징하는 항아리에 성령을 상징하는 물이 채워지자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포도주가 만들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옛 사람이 변하여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 돼버립니다. 우리 옛 사람에 성령님이 부어지면 우리는 새로운 포도주로 변화 되어 버립니다. 고린도후서 5 1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5.     맺는 말

우리는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의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 제자들의 삶 가운데 이적과 기사가 넘칩니다.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신 중요한 목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둘째,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혼인잔치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삶이 바로 예수님과 결혼하여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결혼 잔치의 핵심적인 물건인 포도주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옛 사람이 변하여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제자이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과 결혼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물과 피로서 거듭난 존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전제로 거듭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1.     여러 법률 조항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신명기 12장에서 26장은 십계명의 해설로서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웁니다. 새로운 약속의 땅에서 행해야할 지침을 법조항으로 정리해 놓은 신명기 법전입니다. 본문 25장은 그 법전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했고 다양한 법률들이 소개됩니다.

먼저
 1~3절의 조항은 엄중한 징벌 중에라도 자비를 베풀어라 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재판은 인권 존중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의 사법부를 보면 재판과정에 가기 전에 수사과정에서부터 갖가지 반 인권적인 것들(고문,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을 많이 보는데 이는 신명기의 자비로운 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 4절에 등장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는 것은 모든 노동에는 생계유지라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소일지라도 이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죠.

 

5~10절은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에 관한 법률인데요, 이 법률의 근본 의도는 형수나 제수의 삶에 대한 배려입니다. 과부가 되어 살아가는 여자에게 아들마저 없을 때 당하는 서러움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이 법에 녹아 있습니다. 룻기에서 룻은 이 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지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룻을 아내로 맞아 들이는 것을 포기하자 그는 그 벌로 신발을 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였고, 그 다음 차례의 의무자인 보아스가 룻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2.     정직한 도량형의 사용

    그 외에도 다양한 법률들이 이후에 등장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13~16절에 등장하는 정직한 저울의 사용에 관한 법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법의 핵심은 도량형을 속여 이윤을 내지 말라는 겁니다. 도량형을 속이는 것은 8계명을 어기는 것이지요. 남의 돈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울추를 가볍게 하여 이윤을 내고 어떤 사람은 됫박을 더 작게 만들어 이윤을 내는 데 이게 다 도둑질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다고 본문은 말합니까? 가증하다라고 합니다.

 

이 가증하다는 말은 신명기에 적잖게 등장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이방 종교에서 행해지는 종교 풍습에 대한 배척에 관해 말씀하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신명기 18 9~13절에 보면 이방 종교 풍습을 따라 아들이나 딸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거나 점쟁이나 무당에게 길흉을 묻거나 하는 행위들이 여호와께 가증한 행위이니 그런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쫓아 내 버리라고 말합니다.

 

뭘 말합니까? 저울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용납이 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방 종교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약 백성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위라는 거죠.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이득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이윤을 내는 것에 있어 상당한 유혹이 따릅니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들을 써서 이윤을 내고자 하는 유혹이죠. 예언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대에도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합니다. 아모스 8 5절에는 에바를 작게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는 행위가 얼마나 잘 못된지를 말해줍니다. 호세아 12 7절에도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속이는 자에 대해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인데 북이스라엘에 이러한 거짓 도량형을 사용하여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미가서 6 8절 말씀

    미가 선지자는 아모스와 호세아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남유다의 선지자인데 남유다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미가서 6 9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미가서는 이러한 부정한 저울을 사용한 자들에게 닥칠 재난에 대해 특별이 일러 주고 있기 때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서 6 14절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헛수고라는 겁니다. 아무 수확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씨를 뿌려도 열매를 거두어 들이지 못합니다. 감람나무를 심었는데 기름을 짜낼 정도의 충분한 양의 열매가 거둬들여지지 못하고 포도도 아예 열리지 않기에 오히려 배고픈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돈을 벌긴 버는데 어디로 날아가는지 며칠 지나면 빈털터리가 되어버리는 형국입니다.

 

오늘 새벽기도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삶의 태도를 다짐하고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정직하게 살며, 깨끗하게 살아가자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자는 겁니다. 신명기 25 15절 말씀은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정직한 저울을 사용하는 자, 즉 정직하고 공정한 상행위를 하는 자,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겁니다. 그 축복은 다름아닌 축복은 약속의 땅을 영속적으로 향유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서 우리의 행위에 대해 보시고 은밀히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밀히 행한 선생을 갚아주실 뿐만 아니라, 은밀히 행한 거짓에 대해서도 밝히 드러내십니다.

 

위에서 언급한 미가서 6 9절 앞에 나와 있는 8절 말씀을 읽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 미가서 6 8절 말씀이 부정직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예언자의 메시지로 우리가 오늘 따라야할 말씀입니다. 저울추를 속이며 불의한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부정한 자세를 버리고 어떠한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야 할지 미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제시해 줍니다. 어떤 삶의 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서 6장 8절)


1.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예전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죠.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이 찬양들 아시죠?

 

그런데 여러분은 이 찬양의 가사에 동의 하십니까? 정말 버리고 나눠주는데 풍성해질 수 있나요?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 경제 원리란게 뭡니까?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 바로 세상의 기본적인 경제 원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경제원리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칩니다. 더 많이 나눠 주고 더 많이 베푸는 것이 번성하는 법이라구요.

신명기 24장은 23장에 이어서 사회적인 약자들 경제적인 약자들에 대해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 지에 대한 법률 조항들이 쭉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베풀며 살고 나누며 살아라라는 조항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풀며 나눠주면 너희가 복을 누린다는 전혀 경제원리와 맞지 않는 주장들이 펼쳐집니다.

 

2.     신명기 24장에 대한 개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신명기 24장이 신명기라는 책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지를 살펴 봅니다. 일단 신명기의 알맹이, 신명기의 핵심은 신명기 법전이라고 일컬어지는 12장부터 26장의 법률 조항입니다. 저번 설교에 제가 말씀 드렸듯이 신명기는 너희가 새로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 땅에서 살아가야 할 가르침과 지침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새로운 땅에서 이러한 법률을 따라야 하며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 지침으로서 법률 모음이 바로 12장부터 26장입니다. 그런데 12~26장은 바로 십계명의 해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4장은 8계명에 해당하는 법률로서 다양한 법률 조항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법률들이 강조됩니다.

 

6절 말씀을 보세요. 전당 잡은 물건이 이웃의 생계와 연관된 것(특별히 맷돌)이라면 그의 생명을 전당 잡은 것이니 그런 행동을 피하라고 합니다. 혹시 이웃에게 맷돌 빌려 오신 분은 오늘 아침에 즉시 갖다 드리십시오~^^ 10절부터 13절가지를 보면 겉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속옷보다 겉옷이 중요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겉옷은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기도 하고 저녁에는 이불 대용으로 추위를 막아주는 매우 유용한 생활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런 겉옷을 전당 잡아 버리면 이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것이죠하나님의 너무나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웃의 생계수단에 대한 보호를 위해 아예 법조항에 이런 항목들을 기제해 버린 것이죠.

 

14절에는 가난한 자의 품삯 즉 임금을 체불하지 말라고 합니다. 임금이 유일한 생계수단인데 그거 떼 먹지 말라는 것이죠. 이것 또한 하나님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법 조항입니다. 17장도 외국인과 고아에 대해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대하라고 합니다. 19절부터는 추수할 때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들이 먹을 수 있게 어느 정도 남겨두고 추수하라고 일러 줍니다. 우리 나라에도 비록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까치를 위해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두는 비슷한 풍습이 있긴 하죠.

 

저는 이러한 법 조항들을 보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따뜻하심을 깊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3.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웃을 위한 나눔과 베풂이 곧 하나님에 대한 예배입니다.

24절의 법률 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누며 베풀며 살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눔과 베풂이 예배라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나눔과 베풂은 곧 이웃에 대한 봉사입니다. 봉사는 곧 섬김이지요. 나눔과 베풂 은 이웃을 섬기는 것이지요. 히브리어로 섬기다 라는 단어는 아바드라는 단어인데 예배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결국 섬김과 예배는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웃의 생계와 번영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6절 말씀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는 행위가 제사라는 것이죠.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라고 말해줍니다. 이웃과 나누고 베푸는 것, 가난한 사람의 살림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인 자비를 증가시키는 것이 경제적 번영의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것이 잘 사는 지름길이란 말이죠.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던 찬양의 가사 그대로입니다. 나눔과 베품과 같은 사회적인 자비를 증가시킬 때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 증가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돈을 주관하는 맘몬의 영과의 큰 영적 싸움입니다. 맘몬의 영은 우리에게 늘 요구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움켜져야 니가 부해질 수 있으며 풍성해 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러한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베풀고 나눴더니 더 잘 살게 되더라는 이 놀랍고 거짓말 같은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절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주었더니, 베풀었더니, 내것을 이웃을 위해 포기했더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기까지 하더라는 것이죠. 이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가운데 실천해 보십시오.

 

제물을 돈을 예배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시겠습니까? 재물을 예배하는 자들은 더 움켜쥐고 더 나누지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재물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베풀며 나누는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베품과 나눔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이 더욱 번창해 가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 사사기 6장 11-14절
제목 : 큰용사, 쫄지마


1.     기드온의 독백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300명의 사람으로 수 만 명의 미디안 사람들을 죽여 없앤 사람이랍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미디안이라는 나라에게서 백성들을 건져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답니다. 제가 왕년에 어마 어마 했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의 처음은 작은 겨자씨만 했고, 저는 누룩보다 못한 사람이었답니다. 저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도 므낫세라는 매우 작은 지파 사람이었구요. 그 지파 안에서도 우리 집은 그렇게 높은 지위도 아니고 영향력도 많지 않은 집안이었어요. 저희 집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미디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추수 때마다 미디안 사람들은 낙타를 몰고 와서 우리의 곡식들을 다 노략해 갔어요. 미디안 사람들은 심지어 파종시기까지 쳐들어와 새싹을 다 뭉게버리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렸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속의 동굴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숨어 들어가기 시작했답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하나님이란 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이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근데 저는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 사건이 벌어진 지가 벌써 300년이 지났을 뿐더러 그런 일이 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는 벌어지지 않는지 늘 의심이 있었고, 그 불만은 극에 달했답니다. 이집트를 탈출시킨 하나님이 왜 미디안에게 시달리는 지금의 우리는 구해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출애굽 그거 다 뻥아니야?

 

그렇게 7년 정도 미디안에 시달리고 나니까 빡 돌겠더라구요.

큰 풍년이 들었던 어느 해의 화창한 날이었어요. 저는 깜깜한 밤에 후다닥 밀을 거둬들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밀을 타작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바람이 잘 부는 곳에서 타작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 들켜 곡식을 빼앗길게 뻔했죠. 결국 저는 포도즙을 짜기 위해 큰 돌을 사방으로 파서 만든 포도즙 틀에서  타작을 하기로 작정했죠. 한참을 타작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런데 뒤에 누가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돌아봤더니 아이구 깜짝이야” “당신은 누누누누구 십니까?”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다. 큰 장수 기드온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뭐요? 다시 한 번 얘기 해보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구요? 언제부터 함께 했는대? 지금 나 완전히 어이 상실했거든아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라가 이 모냥 이 꼴이란 말이요? 듣기로는 몇 백년 전에 우리 조상들을 그 분이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이곳에까지 인도하셨다고 하는데, 그 모든 기적들이 지금은 다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거 아닙니까? 안그러면 우리가 미디안의 손에 이리도 시달린단 말입니까?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보쇼!!”

 

저는 막 따지듯이 쏟아 부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 같은 분이 나타나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저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니 아까는 큰 장수야 어쩌고 하더니 이번에는 저의 힘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구하라구요?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안돼!! ~~~ 나 탑 남자 농부라고 이런 것 못해!”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겠어요! 정말 당황하지 않겠어요? 내가 큰 용사라니요. 제가요? ?

 

2.     중요한 건, 하나님이 나를 누구로 보느냐?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있다면하나님이 기드온을 보는 눈과 기드온이 자신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거죠. 기드온은 자신을 정말 누룩 한 줌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 강한 군사로 보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그런 말을 듣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겠죠. 안그래요? 미디안 병사들이 언제 쳐들어올 지 몰라 쫄아가지고 포도즙을 짜는 틀에서 타작을 하는 소심맨 기드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드온은 말 그대로 보잘 것 없고, 매우 작아 보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펼쳐질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구원 스토리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기드온 이 녀석이 비록 쫄고 있고, 따지고 대들고 있지만 기드온을 통해 이뤄질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슴 뛰는 마음으로 바라 보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바라보는 눈과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볼 때,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해야 잘 표현할까요? 한 마디로 허접하잖아요. 다른 말로 찌질하잖아^^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생긴 거라도 좀 잘 생겼으면 모르겠는데키라도 좀 누구 같이 컸으면 모르겠는데….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모르겠는데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잖아요. 이러한 증상을 기드온 콤플렉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기드온 콤플렉스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실은 잘 할 수 있는데 정말 큰 사람인데작다고 생각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느냐 입니다. 싸움은 거기서 결정이 나는 거예요. 기드온이 앞으로 수행할 게릴라 작전은 세계 어떤 전쟁 백과에도 볼 수 없었던 정말 짜릿한 승리였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실 때 이미 승패가 정해졌습니다. 왜요? 기드온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랬기에 기드온은 큰 장수였고, 기드온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모습이 어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지난 주 <뿌리 깊은 나무 14>에서 나왔던 장면을 잠시 영상으로 보시죠.

 

이 영상에서 강채윤이 말합니다. 당나귀 이빨빠지는 소리하지 말고 그런거 하나도 안 중요해!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냐는 거거든. 내가 누구냐면 허 내가 한지골 떨복이거든…” 여러분 저는 이것을 조금 바꿔서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런 것은 하나도 안중요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누구라고 보냐는 거거든. 내가 누구냐면 하나님의 강한 용사!! Mighty Warrior 거든이것이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렇게 부인한 후에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고기나 잡자면서 밤새 이마를 찍어가면서 후회하며 자신을 한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와서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니가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여라예수님은 베드로를 양을 먹이는 목자로 본 것이죠. 예수님이 나를 누구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3.     행복의 조건

    여러분 다음 도표를 봐 보시죠. 어제 교사 경건회에서 강사님이 보여준 도표입니다.


이 도표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주제로 미국의 한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겁니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절반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는 거라고 하네요. 부모에게 어떤 사랑과 관심을 받았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데 50%를 좌우 한데요. 부모님이 집에서 맨날 싸우는 집의 아이들이 행복하겠습니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만 하고 공부 잘하면 인정해주는 그런 분위기에서 정말 행복할까요? 부모님에게 따뜻한 허깅한 번 못받아 본 사람이 정말 행복할까요? 우리의 행복은 이미 태교 때부터 절반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 스트레스 많이 안 받고 남 눈치 안보고 그냥 싱글 벙글인 사람들 있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면 김병철 선생님? 그리고 목사님? ㅋㅋ

 

나머지 60퍼센트 중 10퍼센트가 환경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내가 안 좋은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타고 난 것으로 이미 절반이 다른 사람보다 뒤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환경을 바꿔 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10%밖에 좌우 하지 않는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죠. 대부분의 삶들은 이 10%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우리 고등학생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죠.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해 질거라 생각해요. 아니 착각하죠. 저는 감히 착각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여기 있는 친구들의 99%가 아마도 그런 생각 할걸요?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해져!! 내 환경만 바꾸면 난 행복해 질 수 있어. 이쁜 아내를 얻으면 난 행복해질거야. 착각하지 마세요. 이쁜 애들이 더 까다로워! 그거 아니? 이쁜 애들이랑 살기 힘들어! 불행의 지름길이야^^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도 바꾸기 힘들고 환경도 바꾸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머지 40%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활동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냥 크게 웃는 것, 그러면 행복해 져요^^ 그리고 운동하는 것, 감사의 제목을 적어 보는 것. 이런 의도적인 행동들을 통해 우리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60%의 부분을 바라보시며 기드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강남구 도곡동 대치동이 아니라 종암동에 태어나고 산다는 것, 이거 정말 찌질한 것일지 모르겠어요. 거기다 잘 난 것도 없어 보여! 우울해지죠!! 근데 중요한 것은 세상 학자들은 40% 의도적인 활동이라 표현했지만 우리는 다르게 표현합니다. 신앙의 사람들의 말로, 하나님이 나의 운명을 바꿔 놓실 수 있대두(부장님 버전으로). 하나님 편에 서느냐가 승리의 열쇄라는 것을 잊으면 안되요. 어려서부터 인생을 알아야해요.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나를 바라보면 행복해 집니다. 괜히 세상 잣대 갖다 대면서 불행해 지지말아요!!  괜히 수능 못봤다고 자살하거나 좋은 대학 못갔다고 우울해 하며 인생 다 포기하지 말라구요. 오히려 그 실패가 여러분을 더 멋지게 만들겁니다. 세상 앞에서 쫄지마세요. 당당해 지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큰 용사라 부르시지 찌질이라 부르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큰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011. 11. 13. (주일)

마태복음 13:33 / 전부를 부풀게 하는 능력


1. 적은 양의 강력한 파워
오늘 본문은 2주전에 말씀 드렸던 겨자씨 비유와 한 통으로 읽을 수 있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 두 비유는 적은 양의 시작이 크게 커져버린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나타낸다고 말씀 드렸었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그렇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지만 그 성장이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이라고 하니까 조금 우리에게 안 다가 오죠? 이스트를 봐본 적 있으신가요? 이스느가 누룩인데요 누룩은 다른 말로 효모를 가리킵니다. 많은 밀가루에 이런 이스트 효모나 베이킹 파우더를 넣으면 빵이 부풀어 지고 쫄깃 쫄깃 해집니다. 이 누룩이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곰팡이 입니다. 곰팡이는 고온 다습한 환경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기가 있는 곳, 온도가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번식합니다. 제가 지난 번 집에서 살 때 겨울에 외풍이 너무 심해서 창문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차단했더니 벽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찌더군요. 인류의 3대 난치병으로 알려진 무좀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곰팡이 균의 엄청난 영향력과 번식력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이 균이 도져서 저를 괴롭힙니다. 아무리 카네스텐, 라미실, 무조날 이런 거 발라도 소용 없어요. 엄청난 번식력과 파괴력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곰팡이 입니다. 누룩도 곰팡이의 일종이라는 거죠.

곰팡이 중에 좋은 곰팡이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섯이죠. 그리고 바로 누룩이라 불리우는 효모입니다. 효모는 당과 결합하여 발효를 유발하여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든다고 합니다. 바로 이 이산화탄소가 분비 돼면서 부풀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발효되면서 분비된 에탄올에서 술냄새가 나는 거구요. 효모가 밀가루의 당분에 달라 붙어 밀가루를 발효시켜 부풀리게 만든다는 거죠. 빵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은 바로 이 효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었다고 했는데 분명 이 여자는 빵을 만들기 위해 서 말 가루에 누룩을 넣었던 거겠죠? 서 말은 36리터 정도의 양입니다. 서 말의 밀가루로는 예수님 당시 100명의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집, 즉 사사로운 가정의 살림 규모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가루입니다. 예수님은 왜 서 말이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그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엄청 많은 양의 가루에 붙어 가루 전체를 발효시키고 부풀리게 하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비록 작은 양의 누룩이지만 그 전파속도와 파급효과가 엄청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는 거죠. 하나님 나라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가 미치는 파급력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2. 로마 통치 아래의 기독교
여러분 기독교는 아니 다른 말로 복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하에 기독교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었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곰팡이 취급을 당했지만 기독교는, 복음은 급속하게 로마의 하부조직으로 퍼져 갔고 로마 제국을 잠식해 갔습니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동떨어져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딱 달라 붙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효모가 당에 붙어 발효하여 새로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만들 듯이. 복음은 세상에 달라붙어서 세상과 결합하여 세상 속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로워 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 고등부 공동체는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까요? 저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비록 가루 서 말이라 할지라도 잘 발효된 누룩만 있으면 가루 전체를 다 바꿔 놀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어요.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세요? 가루가 부풀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든지 , 둘째 누룩은 온전한데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든지 입니다.
첫째 누룩이 온전한 누룩이 아니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할 수 없습니다. 누룩이 발효되어야 하는데 누룩이 아니면 누룩의 효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겉모양은 누룩인데 밀가루가 썩은 것이라면 누룩의 효과를 낼 수 없는 것이죠. 썩은 밀가루는 다른 밀가루도 썩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썩는 것 즉 부패하는 것과 발효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발효되면 몸에 좋은 항생물질이 발산되어 더욱 맛나게 합니다. 하지만 부패하면 썩어버려 못쓰게 되는 거죠. 이 발효와 부패는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결과는 전혀 딴 판입니다. 우리 나라 음식에는 발효식품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습니다. 김치와 된장이 대표적인 발효식품이죠. 이 음식들은 썩지 않고 발효되어 우리 입맛을 돋굽니다. 젖갈을 보세요. 젖갈은 정말 신기합니다. 분명 생선의 시체인데 썩지 않고 발효되어 독특한 맛과 향내를 냅니다.

둘째, 누룩이 가루 서말에 들어가지 않으면 밀가루는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세상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혀 확장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비록 작은 누룩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세상에 달라 붙어 있기만 해도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크고 두려운 세상의 풍조에 순응하면서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야지! 괜히 발효 됐다가는 사람들의 비호감만 사고 튀지 않고 대충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 살아갈테야! 난 그냥 가루로 살아갈래!! 괜히 발효되며 살아가는 거 피곤해!

여러분 우리는 잘 썩어지기만 하면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은 왜 맨날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 세상에서 썩어져야 한다. 세상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말씀만 하세요? 좀 부담스러워요. 그냥 대충 안썩고 살아가면 안되나요? 공부 잘 하는 법, 처세 잘하는 법 뭐 이런 거 없나요? 하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는 어디서 살아야 합니까? 물에서 살아야해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이 목적보다 더 큰 목적은 없어요. 우리는 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입니다. 이 세상 속의 누룩이구요.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확장되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기술적인 면만 가르쳐 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너희가 이런 존재이고,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런 사람을 살아야해 라는 취지에서 여러분의 존재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퍼져가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누룩으로 영향력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로 장악되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로마에서 기독교는 마치 누룩처럼 로마를 갉아 먹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완전히 발효시키는데 3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기 까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기독교의 가치와 기독교 정신이 녹아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데 적어도 300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고작 기독교가 들어온지 120년이 되었어요. 로마의 통치 하에서 믿음의 선배들은 폭도들의 잔악한 탄압에 시달렸습니다. 원형경기장의 사자의 밥이 되어 찢겨 가면서도 자신의 누룩이라는 것을 나타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룩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사이에 이 누룩의 영향력이 먹혀들어가게 됐고 300년 경 후 로마는 기독교에 완전히 잠식되게 되어 버린겁니다. 우리 나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밀가루가 되어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없습니다.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밀가루의 모습으로는 아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여러분 마음에 이 그리스도의 썩어짐의 누룩이 있다면 여러분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한 줌의 누룩도 썩어지지 않으면 영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썩어지십시오. 세상 속의 밀가루들과 똑 같은 모습이 아니라 누룩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겁니다.
여러분 나비효과라는 말 아시죠. 저 대륙 건너편의 남미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했을 뿐인데 태평양 이 편에서는 태풍으로 커져서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저는 다른 말로 누룩 효과라 부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정직한 누룩의 몸부림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입니다.

너희는 왜 다른 거야? 라는 핀잔을 들어도 좋습니다. 적당히 살아가라는 타협을 들어도 좋습니다. 우리만은 다르게 살아 봅시다. 소심한 누룩이어도 좋습니다. 모두가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할지라도 우리만은 올곧은 누룩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작은 누룩 한 줌만 있다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엄청나게 크게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썩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발효되시겠습니까? 그냥 밀가루로 남아계시겠습니까? 작게나마 누룩으로 남겠습니까?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마 13: 31 ~ 33 / 작지만, 보이진 않지만 대단한 것.


1. 작아서 좋은 것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키도 작은 것보다 컸으면 하구요. 눈도 작지 않고 저처럼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웃은 사람들 에잇 머리만 더 커라!! 보유 자산도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배기량이 아주 큰 차를 타고 싶어 하죠. 그런 사람들에게 레미콘 트럭이나 타이탄 트럭 같은 배기량이 큰 차들도 좋을 거 같아요. 과일은 어떻습니까? 전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수박도 큰 것은 맛있고, 무척 비쌉니다. 집은 어떻습니까? 집도 매우 큰 평수에서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제가 8평 집에서 살다가 이번에 15평, 거의 두 배 되는 집으로 이사 갔는데 정말 운동장을 방불케 하는 거실이 있어서 좋습니다. 일단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은 크거나 많으면 좋습니다. 용기, 자신감, 믿음, 소망, 사랑…. 이런 보이지 않은 것들 중에도 크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들은 뭐가 있나요? 나이? 나이가 작으면 좋나요? 그런 사람들 에잇! 다시 유치원에 들어가라!! 머리숫 적으면 좋습니다. 저처럼 빛이 나거든요! 일단 부정적인 것들은 적거나 작으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미움, 다툼, 불평, 불만, 욕심, 피해의식 기타 등등 좋지 않은 것들은 작거나 적으면 좋은 것이죠. 특별히 시험이 10일 앞으로 다가온 우리 고3 친구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지금 매우 작아져 있겠죠? 시험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성적표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 엄마 앞에만 서면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가? 여러분 마음은 짐작건데 지금 새 가슴이 되어 무척이나 초라해져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다행이구요! 자신감 또한 바닥을 치고 있겠죠? 불안, 초조함, 스트레스, 좌절 등의 수치는 현재 나타난 게이지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자~ 여기 이 자리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여러분의 내면이 새로워 지길 바랍니다^^

2.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와 같다.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장입니다. 13장 전체가 예수님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매우 비슷한 비유로 앞 뒤에 놓여 있습니다. 두 비유의 공통점은 아주 작은 시작이 그리고 아주 작은 원인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천국을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구요.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죠.

31절~32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어떤 젊은 남자가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통통한 닭가슴 살에 빵가루를 입혀 튀기고 그것을 각종 야채 위에 올려 놓은 후 허니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슬슬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머스타드가 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종자를 파는 사람에게 갔어요. “저기 제가 겨자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겨자씨 하나만 구할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겨자씨 하나라는 말을 듣고는 어이 없다는 듯이 그 사람을 쳐다봤어요. “여보시오! 겨자씨 하나요? 하나? 하나? 겨자씨 하나가 얼마나 작은 지 알고 하는 말이오?” 주인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장난 삼아 정말 겨자씨 하나를 주었어요. 겨자씨 하나를 받아든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그 작은 씨를 조심이 손에 담아 밭 한 귀퉁이에 심었어요. 그 겨자씨는 며칠 지나자 작은 새순을 돋기 시작했어요.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겨자씨는 한 철이 지나자 3미터 크기까지 자랐답니다. 제법 나뭇가지도 무성해지자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하고 그 그늘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쉬었다 가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허니머스타드 소스로 맛있는 치킨셀러드를 만들어 먹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3. 작지만 강력한 하나님 나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줄 아시나요? 저희 집은 어려서 담배 농사를 지었었어요. 봄이 되면 아버지께서 엽연초 조합에 가셔서 담배씨를 받아 오셨었죠. 그런데 그 씨가 어찌나 작던지 한 번 엎어 뜨리기라도 하면 주어 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이 담배씨와 겨자시는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크기도 비슷하죠. 씨앗으로는 분간이 안가죠. 새 순이 막 터올 때까지도 구분이 안갑니다. 하지만 싹이 점점 커져갈수록 둘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씨앗을 통해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생기고 그 나무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들을 거둬 드리게 되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일단 심겨지기만 하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점점 자라나 결국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착각하시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나라는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은 모두 하나님 나라인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다스리시나 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지고 있고 점점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면 안되요.

다니엘서 4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란 왕이 꿈을 꾸는데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무였습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새들이 몰려 오는데 그 나무 밑둥이 잘려나가는 꿈을 느부갓네살 왕이 꿨었죠. 나무는 바로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했었죠.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을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3장 31절 말씀에서도 나무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더 왕성하게 우리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4.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성경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적은 염도가 짠맛을 내게 합니다. 적은 소금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도 마찬가지로 매우 작은 빛이라도 어둠 가운데 비춰지기만 하면 어둠을 몰아 내버립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매우 작은 마을에서 자라셨고 활동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매우 초라한 삶을 살다 갔고, 그 삶보다 더 초라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도 정말 초라한 사람들이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명의 배신한 제자를 제외하면 11명의 제자만을 남겨두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도대체 11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냥 가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명을 부르시며 너의 후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 질거라고 말합니다. 75세의 기력이 다 쇠해 버린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는 매우 역설적인 나라입니다.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고 정말 미미해 보이고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 아니 다른 말로 하나님의 다스림은 여전히 내 삶 가운데 있으며, 그 다스림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11명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을 말해줍니다. 처음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세계의 수 십억 사람들이 그 예수님의 영향력과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 하나가 엄청난 가지치기를 하며 자라듯 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이 오히려 아름답고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작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만 보니까 작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아니 내가 이 성적표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갈 수 있는 이 대학으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완전 망했어. 이제 끝장이라구!! 이러고들 있지?? 지금 너희 모습이 겨자씨 같이 초라하고 작아보이더라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니까? 너희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은 점점 커져 갈 것입니다. 좋은 대학 못 간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수능 잘 못 볼거라 벌써부터 낙담하며 포기하지 말란 말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나는 비록 초라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크십니다. 나를 통해 이뤄 나갈 하나님의 나라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세요. 다 같이 따라 해 봅시다. “난 결코 작지 않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통해 여러분을 통해서 이죠.
여러분들의 10년 후가 저는 정말 기대 됩니다. 오 헨리의 소설에서 처럼 우리 모두 10년 후에 그 가로등 아래서 한 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저는 기대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큰 나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한 겨자씨 한알에 불과 하지만, 여러분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여러분을 자라게 하실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아니 작기에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이죠. 성경은 정말 작은 것들이 가치 있다고 말하고 있다니까요? 자기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바로 작은 자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제 곧 큰 나무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서 큰 나무를 봅니다. 지금은 비록 겨자씨 같은 작고 초라한 삶일지 모르지만 큰 나무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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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뿌잉뿌잉! 우리 종암유치원 고딩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고딩 여러분의 진학상담선생님 김수능이예요. 우리 고딩 여러분 좋은 대학 가는 거 어렵지 않아요~~ !!! 좋은 대학에 가려면 일단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면 되요. 집은 강남의 대치동 근처나 노원의 중계동 또는 목동 근처에 있으면 더 좋아요. 종암동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하냐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할아버지가 돈이 많으시면 되요. 그리고 아빠는 여러분의 공부에 무관심하면 되구요. 엄마는 정보에 무지하게 빠르신 분이면 되요. 그리고 어머니는 좋은 학원이면 어디든 날 데려다 줄 수 있는 그런 한가한 분이면 되요. 이 모든 것이 갖춰지지 않았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친구들은 노는 시간을 줄이면 되요. PC 방이나 노래방 놀이공원 등은 사전에서 아예 지우시면 되요. 학교 도서관 화장실 학교 도서관 화장실 이렇게 3년만 죽어라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성적이 안 올랐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여러분 탓이 아니예요. 여러분 부모님이 안 좋은 머리를 물려주셨기 때문이예요. 이런 친구들은 수능 한 방을 노리면 되요. 오엠알 카드 밀려 쓰는 법에 대해서는 민병준 친구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되요. 밀려 써서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 대단한 학생이거든요.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능은 어려운 시험이 아니예요.
이 모든 것에도 자신이 없다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적인 여유만 있으면 되요. 올해 안되면 내년에 잘 보면 되구요. 내년에 못 보면 그 다음해에 잘 보면 되요. 그렇게 20년만 수능을 보잖아요? 20년 후에는 아마 수능이 사라지고 경로우대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니까요. 어때요. 좋은 대학 가는 것 어렵지 않죠? 이렇게 수능 잘 봐서 모두 모두 좋은 대학 가봐요!!

2. 하나님의 약속
이스라엘은 원래 사람의 이름인데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주셨어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이예요. 야곱은 천성적으로 좀 꼼수가 많은 사람이예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먼저 태어날라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이죠. 야곱이라는 뜻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장성해서는 형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버리기도 한 인물이죠. 결정적으로 장자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에서로 변장하여 자신의 아버지에게 받아낸 매우 치밀하면서도 꼼수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이 축복을 가로챈 사건으로 에서는 화가 폭발하고 동생을 잡아 죽이려 하였어요. 이것을 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키기에 이릅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자신의 오빠가 있는 하란땅으로 가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야곱이 자신의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며 하란으로 가는 노중에 생긴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길가에서 잠을 청하다 꿈을 꿉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요. 아니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들었던 약속과 똑 같은 약속이었습니다. 14절 말씀이 바로 그 조상들에게 동일하게 했던 약속입니다. 14절 말씀을 읽어 볼까요?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결국 야곱을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들과 후손들이 나올 것이고 그 후손들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는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약속에 덧붙여서 한 가지를 더 약속합니다. 왜냐면 지금 야곱이 너무 떨고 있거든요. 야곱은 지금 형 에서가 언제라도 쫓아와 자기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쌓여 있구요.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어요. 마치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친구들과 같은 상태라면 이해하기 쉬울까요? 불안에 떨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형의 위협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연 나를 지지해 주고 계실까 였습니다. 내가 형을 속여 축복을 받아 내고 쫓기는 신세가 됐는데 과연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 안좋게 보시는 건 아닐까?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확실한 약속을 확증해 주십니다. 니가 비록 지금 쫓기는 신세지만 너를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이 생겨날거야. 즉 너는 살아서 결혼도 하고 잘 될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니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지켜줄께~~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줄게 라고 재차 약속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고백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분명히 여기 계시는데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 고3 쫄지마!!
고 3 친구 여러분 아까도 말했지만 야곱의 심정은 여러분들의 심정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곧 시작될 전쟁터 앞에 포진돼 있는 병사들의 마음 갖겠죠. 두근 두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와야 할텐데 걱정에 걱정으로 가득차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심리상태를 좀 더 세밀하게 돋보기로 살펴볼까요? 여러분이 진짜 떠는 이유는 이 수능에 나의 인생이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수능 한 번 잘 보면 진짜 대박나는 거고. 수능 한 번 망치면 인생 쪽박 차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쉽게 얘기해서 수능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한다는 것이죠. “아니 이것이 고등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 하실 말씀이란 말입니까?” 지금 3년 동안 이 시험 한 번 잘보려고 준비해 온 저희 앞에서 수능에 너무 큰 의미를 두냐는 말이 뭔 말이랍니까?”

맞습니다. 수능 시험 정말 중요한 시험이죠. 하지만 수능 한 번에 인생이 아작나거나 그러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수능 한 번에 인생이 평탄해지는 것도 아니구요. 어찌 보면 수능시험이 우상이 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수능을 숭배하죠. 수능신이시여 나에게 강림하여 대박나게 해주세요. 이 엿 먹고 나좀 붙여주소서! 수능의 결과는 두 가지가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마음의 안정의 정도 플러스 둘째 나의 노력의 정도입니다. 후자의 것 즉 노력의 정도는 지금 남아 있는 3일동안에 어떻게 바꿔보기 힘듭니다. 지금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 즉 마음의 안정의 정도입니다. 얼마나 여유있게 시험지를 대하고 차분히 풀어내느냐가 관건인거죠. 이것은 닦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수능 시험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무거운 부담감이 나를 짖 눌러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 버리죠. 오히려 수능시험도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오신 하나님이 이후 내 인생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의 작은 도구이자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확신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볍게 하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공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경험들을 수능 시험 가운데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수능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겠죠? 수능을 잘보고 못보고의 결과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선하게 이끄신다는 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내가 너를 축복할게… 너를 통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축복을 받게 될거야.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잊지 말아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지켜줄거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수능의 결과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수능이라는 문을 일단 통과하시고 나면 그 문을 통해 열리는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딛게 될 것입니다. 고등학교와 비교 안되는 더 치열한 무한 경쟁으로 뛰어들게 되는 겁니다. 그 무한경쟁의 본격적인 라운드가 시작되는 출발선상에 있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약속 없이는 도저히 그곳에서 살아 남기 힘듭니다. 오늘 혼자서 들판에 내동댕이쳐진 야곱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죠. 자신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거야. “아~~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는구나” 야곱처럼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수능 시험장에도 함께 하실거구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삶 가운데 떠나지 않고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실 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고3 친구들. 쫄지마!!!

참고로 저는 수능을 세 번 망쳐본 사람입니다. 제가 수능 1세대인데요. 수능 첫해에는 여름과 가을 두 번 봤습니다. 두 번 다 망쳤어요. 그리고 재수를 했죠. 재수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원 없이 놀았어요. 세번째 수능도 결과는 안 좋았어요. 정말 절망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당당히 있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우리 인생에서 한 큐라는 것은 없습니다. 한 큐 한 큐, 한 점 한 점이 모아져서 모자이크를 만들고 그 모자이크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돼 가는 거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실하게 약속해 주십니다. 내가 나의 뜻을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수능 한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능은 하나의 도구요 과정이라는 생각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수능을 통과하는 그 과정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하시고 지켜주신다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수능 시험을 앞 둔 고 3 수험생을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 오셨던 것 처럼 앞으로도 나의 삶을 떠나지 않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도와주세요. 목요일에 있을 수능성적에 평안한 마음으로 안정감을 가지고 임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준비하고 쌓아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지금 이곳 뿐만 아니라 시험보는 수험장소에도 함께 하시며 이후에 내가 어딜 가든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주님 손에 위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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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자신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자신이 왜 불행할까에 대해서 생각도 안해보고 불행하면 진짜 불행한겁니다! 내가 왜 불행한지 알고 불행해야하지 않겠어요? 전도사님이 고등부 전도사를 맡지 않았다면 고등학교를 회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고등부를 맡다 보니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많이 떠 올리곤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어두웠고, 가장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몰랐던 것이었어요. 아무도 저에게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너는 정말 특별하고 멋져.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집에서도 그랬고, 교회에서도 그랬고 학교는 더더욱 그랬죠.  어딜 가나 비교와 경쟁이 있을 뿐이었죠. 비교는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사람을 한 없이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리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거예요. 토끼는 토끼끼리 경주해야지 거북이와 왜 경주를 하는 겁니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너무나 유니크하고 가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큰 비교 항목은 뭡니까? 성적이죠. 특히 이 잣대는 선생님들이 잘 꺼내드시죠. 성적 나쁜 놈들은 개패듯이 맞았습니다. 가치 없는 쓰레기 취급 당하죠. 2때 담임샘, 지난 번 시험과 비교해서 점수가 떨어지면 그날 복도에 일렬로 엎드려 받쳐였습니다. 아직도 복도에 길게 늘어 섰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도미노인 줄 알고 일렬로 엎드려 받쳐 있는 우리를 발로 차시죠.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리는 암암리에 성적이 정말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사람의 가치가 거기서 나온다고 세뇌를 받습니다. 성적 좋은 놈들 죄송합니다 감히 놈이라는 호칭을 붙였어요. 걔네들은 정말 가치 있고 필요한 존재들로 취급받습니다. 

 

두 번째 큰 비교항목은 아마 외모일겁니다. 특별히 남자 친구들은 주일마다 전도사님의 수려한 외모를 보면서 좌절하리라 생각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외모 또한 서로가 비교할 꺼리가 못됩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윤아, 누구 뭐 이런 애들이랑 비교를 합니까? 박지선, 신봉선, 오나미 같은 사람과 비교하면 행복해지 잖아. 농담이구요. 일단 비교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비교하다라는 영어 단어는 Compare 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comparo에서 왔습니다. 원래는 짝지어주다, 대등하게 하다라는 뜻이예요. 원래는 대등하게 하려고 그 옆에 놓았고, 짝지어 주기 위해 옆에 놓았고, 친구가 되라고 옆에 놓았는데 인간의 습성상 비교가 자연스럽게 일어난거죠. 그래서 비교하다로 뜻으로 발전한거죠. Comparo의 끝의 O를 빼면 Compar가 되는데 친구라는 뜻이 됩니다. 재밌죠? 비교하다라는 말에서 o를 뺐더니 친구가 되버린겁니다. O가 뭘까요? Others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사람과 나를 견주는 것을 빼버리니 그가 나에게 친구가 되버리는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진흙으로 비유하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어떤 그릇을 만들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맞게 그릇을 빚습니다. 이사야 45:9절에 보면 이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대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라고 말하고 있어요.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말입니다! 생각하기를 우리가 서로 서로 비교하는 것이 이런 격일 것 같아요. 나의 외모를 보고 비교하는 것은 나를 만드신 분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만드신 거죠?” “이것이 최선입니까?”라고 묻는 격이라는 거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책을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하게 만드셨고, 어떤 사람은 놀기를 좋아하게 만드셨어요.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노는 것을 잘 개발해 보세요. 분명 여러분이 쓰임 받을 곳이 있을 겁니다. 각자 각자가 다른 용도와 다른 기능으로 만들어 졌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스터 피쓰 즉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겁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은 그것이 대생이 됐든 정물화가 됐든 추상화가 됐든 피카소의 작품이 되어 무한한 가치가 생겨버리는 겁니다. 우리의 가치는 성적이나 외모에서 나오지 않아요. 속지 마세요. 우리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분에게서 나온다는 겁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손가락질 하고 놀린대도, 신경쓰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치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있어 친구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는 거 압니다. 여자 친구들 중에 영향력 있는 친구 한 명이 야 쩨 저런 얘야 놀지마이 한 마디 하면 그 때부터 여러분은 왕 따 되는 거잖아요. 친구가 여러분에게 야 너 못생겼어이러면 여러분은 못생긴 사람이 되버리잖아요. 속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치는 친구의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한 고등학생 어머니가 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터놓으시더군요. 딸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사이, 모든 친구들이 자신의 딸에게 험담하면서 딸이 그동안 친구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 꼬발리며 이간질을 했나봐요. 수학여행 후 친구들 열 명 정도가 이 친구를 둘러싸고 니가 어떻게 나한테 글런 말을 할 수 있어하면서 이 친구를 몰아 세웠고. 이 따님은 그 이후에 학교를 못나가겠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여자 여러분 왜 그러는 겁니까?  친구들의 말에 자신의 인생이 좌지 우지 되는 고등학생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나봐요. 여러분 우리들의 가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결코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종환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라는 글을 이제 읽어 드리겠습니다.

장미꽃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 오는 달디단 향기, 겉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매혹적인 자태. 장미는 가장 많이 사랑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꽃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 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습, 내 연한 심성을 기다리며 찾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장미는 해마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데 나는 몇 해가 지나야 겨우 한 번 꽃을 피울까말까 하는 난초로 태어났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화사한 꽃을 지니지 못하지만 장미처럼 쉽게 지고 마는 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장미처럼 나를 지킬 가시 같은 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연약하게 휘어지는 잎과 그 잎의 담백한 빛깔로 나를 지키지 않는가. 화려함은 없어도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 더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나는 도시의 사무실 세련된 탁자 위에 찬탄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장미가 아니라 어느 산골 초라한 집 뜨락에서 봉숭아가 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 있을까 하고 자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붉고 짙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고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붉은빛이나 연보랏빛의 촌스러운 얼굴빛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봉숭아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빛깔을 자기 몸 속에 함께 지니고 싶어 내 꽃잎을 자기 손가락에 붉게 물들여 지니려 하지 않는가. 자기 손가락을 내 빛깔로 물들여 놓고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만큼 장미는 사랑받고 있을까. 장미의 빛깔은 아름다우나 바라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이지 봉숭아처럼 꽃과 내가 하나 되도록 품어 주는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는가.

장미는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시기심도 생기고 그가 장미처럼 태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질투심도 생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 흔하디 흔한 말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우리 옆에 있는 친구에게 고백해 줍시다. “넌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 “너의 가치는 성적이나 외모에 있지 않아!”라고 얘기해주세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 너무나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진흙 같은 우리를 세상의 최고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죠.


본 설교는 종암고등부 친구초청잔치에서 했던 설교문이고, 라디오 예배 형식을 빌러서 "위대한 친구"라는 주제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본문: 마태복음 11: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     두 여인의 죽음

     1997 8월 말 그리고 9월 초에 세상의 주목을 받던 두 여인이 6일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여인의 장례식은 모두 전 세계로 생중계가 되었죠. 한 여인은 35살의 꽃다운 여인였고, 다른 여인은 86세의 쭈굴탱이 할머니였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35살의 미모의 여인은 바로 영국의 윌리엄 왕자의 왕세비였던 다이애나 였구요. 86세의 할머니는 가난한 하고, 배고프고, 벌거 벗고 집없는 사람들의 친구이자 엄마였던 마더 테레사 수녀였습니다. 다이애나는 윌리엄 왕자와 이혼 후 여러 남자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구설수로 오르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죠. 그의 외모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을 줄 모르나 그의 삶을 흠모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인을 뽑으라 하면 아마 세 손 가락 안에 들 여인이죠. 그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가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소감으로 한 말입니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그녀는 바로 고아와 과부들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위대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세계는 함께 울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녀의 삶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별명

    여기서 문제 하나 나갑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대적자들에게 불리웠던 예수님의 별명은 무엇이었을까요? 힌트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합니다. 정답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 주를 즐기는 사람그리고 하나가 더 있죠. “세리와 죄인들의 칭구여러분 그 고귀하고 순결하신 이미지의 예수님의 별명을 한 번 봐보십시오. “먹기를 탐하는 사람” “식탐이죠. 헐 예수님이 식탐?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주정뱅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하게 지낸다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데 그들하고 뭐하면서 놀아야겠어요?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그들의 관심을 끌어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어주고 즐겨주어야 했던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였죠.

 

마더 테레사도 다이애나 같은 화려한 삶, 품격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청빈한 삶을 선택했었쬬.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였죠. 예수님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셨어요. 누가 그러더군요.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 지렁이 아니 바나나가 된 거 보다 훨씬 어마어마 한 거라구요.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죄인된 인간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죠.

 

예수님이 이 시대의 고등학교로  오신다면 누구의 친구가 되실까요? 여러분들이 손가락질 하는 양아들, 날날이, 밥맛들, 일진, 왕따 뭐 이런 애들에게 가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 뭔가 모자란 사람들의 친구, 병든 사람들의 친구이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중에 나는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이야, 나는 죄가 가득하고 생각도 너무 지저분해.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실수 투성이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런 친구들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의 친구 목록 1순위 후보로 올라 있으십니다.

 

세리와 죄인들 처럼 문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친구로 다가가 주셨어요.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은 마찬 가지입니다. 문제많은 나, 문제많은 여러분을 위해 친히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위대한 이유죠. 아무 매력이 없고, 함께 하기에 부담스럽기까지 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친히 친구가 되어 주신 것이죠. 이제 예수님이 내민 손을 잡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 보다 위대한 친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위대한 친구 예수님을 여러분의 친구로 모실 때 삶의 참 기쁨과 만족이 있을 거예요!








본문 - 누가 복음 15:1-7
제목 - 잃어 버린 자를 찾을 때까지

1.     잃어 버린 것.

    저는 뭔가를 깜빡 깜빡 잘 잃어 버립니다. 우산은 로스템 1순위 항목입니다. 로스템이 뭐냐구요? Lost item 의 합성어입니다. 물론 제가 만들었습니다. 우산을 항상 버스에 놓고 내리고 버스를 따라가 보지만 헛탕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애들이 있는 집에서는 놀이 공원 한 번쯤은 갑니다. 놀이 공원 가면 꼭 나오는 방송이 있죠. “아무개 아이의 보호자께서는 보호소로 와주십시오. 아이가 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타게 찾고 있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죠. 길 잃은 아이들은 그렇게 애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작 애타고 절박하고 하늘이 까매지는 쪽은 그들을 잃어 버린 부모님이죠. 놀이 동산에서 부모나 동행을 잃어 버린 아이들은 의외로 여유가 있습니다. 이탈될 때부터 그들은 여유가 있었어요. 앞에 가는 아이 풍선이 좋아 보여 그냥 좇아 가다 길을 잃어 버리고 뭐 이런 식이죠. 저희 아내도 어린 시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부모님을 잃고서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다죠. 길을 잃어 버렸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대요. 보호소에서 느긋하게 엄마아빠를 기다렸다더군요. 2003년에 제가 있던 교회에서 중국으로 의료선교를 갔었어요.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로 이동하여 인원 파악을 하는데 고등학생 한 명과 초등학생 한 명이 사라진 거예요. 난리가 났습니다. 이리 저리 한 참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호텔 로비에서 이 친구들을 발견했어요. 제가 발견했는데 완전 여유로운 거예요. “너네 여기서 뭐하고 있니?”라니까. “한국 집에 전화할려고 호텔 직원한테 물어보고 있었어요” “너네 지금 미아거든, 이렇게 여유로우면 안되거든, 다들 걱정하고 난리가 났거든제가 서두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잃어 버린 자보다 잃은 자가의 마음이 더 조급하고 애타고 아프다는 겁니다.

 

2.     양을 잃어 버린 목자의 마음.

    본문을 봐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죠. 본문의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은 99마리의 양도 아니고 잃어버린 1마리의 양도 아니고 잃은 양을 찾아 헤매고 있는 목자가 아닌가 합니다. 솔직히 길을 잃은 양은 자신이 길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어딘가에서 유유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석양이 짙어지면서 밤이 다가오고 있는 들녘의 목자의 마음은 조급해 집니다. 동료 목동에게 99마리를 맡긴 후 그는 왔던 길을 돌아가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양을 찾아 나선 목자는 언제쯤 돌아올까요? 보기를 드리겠습니다. 1 10 2 11 3 12 4번 찾을찾을 때 돌아오지 않는다. 정답은 몇 번 입니까? 그래요 찾을 때까지이 목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편 이쪽에서 99마리의 양을 몰고 가던 목동들은 저 멀리서 메아리쳐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를 듣습니다. “찾았다~~~” “내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구~~” “야호~~” 목소리는 점점 커져 저 멀리서 양을 메고 뛰어 오는 목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양을 들쳐 메고 오고 있는 목자의 모습이 여러분 그려지시나요?

 

여기서 질문 하나 나갑니다. 목자는 왜 양을 들쳐 메고 오고 있을까요? 또 보기를 드릴까요? 1번 양이 지쳐서 탈진되었기 때문에 2번 양을 찾은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에 3번 둘 다. 정답은 무엇입니까? 3번입니다. 양이 지쳐서 탈진 됐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시는 분 있을지 모르지만 탈선한 양은 분명 문제가 있는 양이었을 거예요. 혼자 헤매다 가시에 찢기고 낭떨어지에 구를 수도 있구요…. 매우 처량한 상태로 전락했을 게 분명합니다. 지칠대로 지친 양은 걸을 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기에 목자는 그 양을 들어 메고 갈 수 밖에 없었고, 설령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목자는 양을 찾은 기쁨에 둘러 메고 왔을 거예요.

 

3.     두 가지 길이 있다.

    성경 책 말고,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디다케라는 책이 있는데 그 열두 사도의 가르침의 1 1절 첫 구절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인데, 두 길의 차이가 큽니다. “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죽음의 길 아니면 생명의 길 두 가지 뿐입니다.

 

여기 계시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생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길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에 의해 닦아진 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이 곧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며, 진리에 이르는 길이며 생명에 이르는 길인 것이죠. 하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며 파멸로 이르는 길이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왜 그렇게 애타게 그 양을 찾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 양은 지금 죽음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생명의 길로 옮겨 오고자 목자는 그 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헤매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길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4.     이상한 계산 법

    본문을 읽으면서 이상한 계산 법에 우리는 놀라죠? 99마리를 버려두고 1마리를 찾아 헤매는 목자의 계산 법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99마리를 있다고 기뻐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1마리를 다시 찾았다고 난리 법석을 피우고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아 셀러브레이션을 합니다. 이 계산법이 우린 참 익숙하지 않죠? 이것은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다시 찾아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계산 법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남산 케이블카를 타 보셨나요? 충무로 쪽에서 남산을 올라가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있습니다. 남자친구들 필수 데이트 코스니 잘 들어 노세요. 전도사님과 사모님이 데이트하러 하루는 남산 케이블 카를 타러 갔어요. 줄을 섰는데 타는 줄이 저에게서 끝나서 사모님은 제 다음 케이블 카를 타고 와야 했어요. 지금 가상 현실인거 아시죠? 실제 였으면 이러면 안되겠죠 형제님들 함께 케이블카를 타야지. 어쨌든, 저는 먼저 무사히 도착했어요. 그런데 건물 1층에 불이 붙어서 타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밑으로 내려갈 수 없고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와야 구출이 되는 겁니다. 조바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다행히 저희 아내가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구출을 받았어요.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화재가 나지 않고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도감과 기쁨이 있겠죠. ~~ 위험에서 구출됐구나. 살아 있구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구나.

 

훌륭한 예가 됐을지 모르지만 바로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의 샘법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 위험에서 안전으로 옮겨진 것,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 기쁨은 어떤 것으로도 상쇄되어지지 않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샘법입니다. 잃지 않은 99마리보다 잃어버렸다 찾은 한 마리 때문에 기뻐하는 겁니다.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아십니까? 한 명의 영혼은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지금 생명의 길이 아닌 길 가운데서 헤매는 여러분의 친구들이 아른 거리시나요? 주님은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주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죠? 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합시다. 한 명이 주님께 돌아올 때, 하늘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잃은 양을 되찾은 기쁨으로 천국은 들썩 들썩 거리는 겁니다.

 

길 잃은 양들이 주님께 돌아올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선생님이십니다. 이 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며 응원하고 계시는 줄 아십니까? 선생님들 그쵸? 이 선생님들도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우리 잃은 양들, 로스트램즈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기뻐 뛰실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들의 막춤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잃은 양들을 선생님께 데려와보세요. 선생님들 잃은 양들이 돌아오면 막춤 추시는 거죠? 스승의 날에 다름 아닌 잃은 양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단연코요!!

 

여러분 반 친구중에 출석부에 올라가 있지만 고등부 올라온 후로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그 친구들을 여러분이 들쳐 메고 오시면 어떨까요? 그들이 주님께 돌아올 때, 천국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질거예요. 레알 큰 잔치입니다. 잃은 양이 아니라도 여러분의 베프 절친에게 예수님 이야기 한 번도 꺼네 보았다면 이번에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교회에 나가보자고 해보세요. 그리고 그 친구를 위해 여러분이 사연을 적어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사연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알차게 할 뿐만 아니라 초대되어온 친구에게도 큰 감동을 줄거예요.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 함께 기도하며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 보아요^^